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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태평한 생각 02

1. 시작

안녕하세요, 저는 박성진이고요. 태평공공예술창작소의 문학파트 작가로 입소를 하게 됐어요. 총 열 분의 작가분들이 신흥동과 태평동에 입소를 하였는데, 그중에 저만이 유일한 문학 분야 작가이고 저를 제외한 나머지 분들은 다 시각예술 분야의 작가입니다. 
태평공공예술창작소에 입소하기 전과 입소한 후의 생각들이, 시간에 흐름에 따라 좀 달라졌어요. 뭐, 저를 비롯한 다른 작가분들도 실제로 이 장소에 있으면서 많이 바뀌었을 텐데요.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창작소에 입소하기 전에는 공공예술이라는 키워드가, 그 이슈가 저에게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공공예술이란 것을 내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창작소에 입소 지원을 했고 또 막상 여기 오고 나서도 저는 여전히 제가 공공예술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만이 아니라 다른 작가분들, 지역에 계신 분들, 그리고 이 창작소를 설계하고 정책을 집행하시는 기관도 모두가 자신은 공공예술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우리 모두가 자기 나름의 공공예술을 머릿속에 생각하고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것은 틀린 공공예술이고 저것은 옳은 공공예술이고, 우리는 정답을 찾아가야 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저는, 공공예술이라는 단어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이 단어가 발생하게 된 것은 공공장소+미술, 그러니까 조각이든 벽화든 혹은 장식을 위한 공예품이든 시각적인 작품이 공공장소에 놓이는 그런 아주 소박한, 협소한 단계에서 출발을 하였지만 그로부터 벌써 6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면서 공공예술이라는 장르는 매우 다양하고, 어찌 보면 새로운 장르의 공공예술을 넘어서서 이제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공공예술일까?’ 라고 섣부르게 정의를 내리기조차도 좀 엄두가 안 날만큼 확장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공예술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이 범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할지 곤란하던 차에 일단 자리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공공예술에 대한 제 생각을 다시 처음부터 짚어보면요, 어쨌든 공공예술은 예술이어야 하고요. 그렇지만 공공성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리고 특별히 우리 태평창작소, 그리고 신흥창작소의 경우에는 지역이라는 장소성과 깊게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공예술을 생각하는데 되도록 ‘공공성, 장소, 그리고 예술이라는 키워드를 우리가 염두에 두고 거기서부터 출발을 해나가면 어떨까.’ 라는 마음에서 이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냥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하고요. 여러분도 보시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동네 친구들도 많이 보일 것이고 아는 친구들도 보이고, 또 이 자리에서 오늘 만난 김에 친구가 돼서 돌아가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2. 예술교육_케이

저는 성남 분당에 위치한 작은 스튜디오인 알투스에서 10여 년째 활동하고 있어요. 알투스는 문학과 미술을 전공하는 그런 작가들이 모여서 만든 그룹인데... 처음 결성할 때는 되게 거창했거든요? 뭔가 예술로 세상을 바꿀 거 같았는데 막상 그런 건 아니고. 요즘에는 뭔가 좀 더... 예, 그런 문화예술 관련 기획을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공공예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공공예술을 주제로 CoP 활동을 하면서 작가들끼리 스터디도 하고 그러던 차에 이런 자리가 생겨서 기꺼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문화예술기획 관련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저는 제가 하는 일이 공공예술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한 게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어요. 저한테 있어서 공공예술은 약간 뭐랄까? 1차원적인 거 있잖아요. 딱 떠오르는 것은 공공조형물. 아시잖아요? 우리나라 곳곳에, 어디에 가나 건물을 지으면 건축법에 의거해서 생기는 공공조형물. 그리고 흔히들 아시는 벽화. 벽화는 굉장히 프로젝트도 많고 TV에도 많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부분들이 저는 공공예술이고 혹은 공공미술이라고,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면 공공예술이라는 말보다는 공공미술이 훨씬 더 많이 나오고. 그런데 저희는 그런 일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으니까 ‘내가 하는 일들이 공공예술의 범주에서 좀 다른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던 중, 작년에 성남 이매동에서 공공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사실 처음에 저희한테 주어진 일은 이매동의 한 지하보도를 예쁘게 꾸미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꾸미는 하청업체가 아니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우선 이매동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두 달 동안 예술수업을 진행했었어요. 그 이유는 아이들이 단순참여자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행사 참여사진 촬영하고 마지막 날 와서 또 사진 한 장 찍고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저희와 같이 경험을 하는 두 달 동안 좀 더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수업을 진행했었어요. 그래서 같이 현장에 나가보기도 하고 공공예술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하고, 지역성이나 환경문제라든가 더 나아가 이 프로젝트를 지역민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되는 것인가. 등등의 이야기를 아이들과 하다보니까 저희도 좀 더 공부가 된 거예요. 작년의 경험은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요. 그 전까지 저는 항상 의문이 있었어요. ‘나는 기획자일까, 작가일까.’ 왜냐하면 저는 공공예술 성격을 지닌 기획의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저의 시작은 개인적인 작업이었거든요. 가장 최근의 개인작업은 도시에서 살면서 내가 갖게 된 생각들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앞에서 이야기한 이매동의 지하보도 프로젝트 같은 공공예술프로젝트들도 저한테는 굉장히 작업 같거든요. 봉사활동이나 복지, 혹은 그냥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이만큼 시간을 투자하고 할 수 있었을까? 전혀 아니거든요. 이건 내 작업이다,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전까지 저는 공공예술=작가의 작업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어서 별도의 작업, 별도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런 경험을 하고 또 CoP로 공부를 하게 되면서 ‘공공예술이란 자체가 어떤 사회참여형 예술로서 하나의 작가가, 혹은 집단 전체가 작업으로서도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에 공공예술, 그러니까 공공미술이 시작되었을 때는 그냥 그 작품이 야외에 놓여있는 자체로 사람들의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 이거 우리 동네랑 안 어울리는 거 같아.’ 라고 장소성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고 나면 이게 작품 하나하나를 볼 게 아니라 도시 전체적으로 봐야 되니까 도시디자인이나 도시재생 쪽으로도 확대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확장되다보니 공공이라는 장소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좀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그전의 공공은 공공이 정말로 함께하는 장소성, 물리적인 역할을 말했다면 이제는 물리적인 것을 넘어서 그곳에 살고 있는 공동체를 아우르는 말이 공공의 개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제는 그 단계도 지나서, 많이들 하시겠지만 SNS라든가 여러 가지 인터넷 세상이 있잖아요? 누가 인터넷에 뭘 하나 잘못 올렸을 때 그것이 공공으로 퍼져나가는 속도가 더 이상 그것이 인터넷 안의 공간, 누군가의 사적인 SNS라고 생각할 수 없는 또 다른 제4의 공공의 장이 열리고 있는데요. 그래서 공공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갈수록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사회참여형으로서의 공공예술, 유형의 것이 아니라도 무형의 것으로 작용할 수 있는 공공예술을 말해보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태평공공예술창작소가 태평동에 생기는 것이, 작가들이 와서 뭔가 벽화를 해주고 동네를 예쁘게 꾸며주는 것 외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누가 그 공간에 사는가에 따라 그 공간이 어떻게 달라지는, 그런 참여적인 형태의 예술에 대해서 몇 가지 사례를 보여드릴 거예요. 각 사례들은 생태적인 관점에서 활동한 것도 있고 내 주변, 내 동네를 예쁘게 하고 싶다는 목적, 공공의 공원이 필요해서. 그리고 아니면 시 차원에서 우리 시의 어떤 정체성을 높이기 위해서 등의 이유가 있는데요. 제가 주목한 거는 ‘그것을 진행하는 주체가 누구냐.’입니다. 어떤 때는 작가가 주체인 경우도 있고, 시가 주체인 경우도 있고, 시민이 주체가 되어 진행한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떤 방법을 거치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를 중점으로 보겠습니다. 다만 지금부터 보여드리는 사례들은 최신의 것들은 아니에요. 최소한 10년, 20년 이상 그 경과와 지속성에 있어서 어느 정도 확정이 된 예로 선택을 했습니다.

2-1. 7,000 그루의 떡갈나무 
이것은 만약 여러분의 집 앞 광장에 수천 개의 현무암기둥들이 쌓여있다면. 그것이 정당하고 그 신념이 옳다면, 지지하실 건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셉 보이스라고 독일의 유명한 전위예술가인데, 이 작가가 작업활동 외에도 말년에 정치적인 활동을  많이 하셨어요. 녹색당이라는 것을 창당하고 의회 진출도 하려고 했는데 거기까지는 잘 안 됐었는데, 그분이 정치적인 방식으로는 자기가 원하는 신념이라든가 도시생태에 대한 부분을 바꾸는 부분에서 좌절이 있으셨던 거 같아요. 근데 그러면 남은 선택은 뭘까요? 작가니까, 내가 제일 잘하는 것. ‘예술적으로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부분에 주목한 것이죠. 
독일의 카셀에는 굉장히 유명한 프로젝트가 있죠? 도큐멘타(Documenta)가 5년마다 열립니다. 요셉 보이스는 자신의 작가적 역량을 발휘하여 카셀 도큐멘타가 열리는 82년도, 카셀의 광장 앞에 이렇게 현무암을 쌓았어요. 저기 조그맣게 사람 보이시나요? 사람 크기에 대비해 보면 이게 얼마나 거대하게 쌓였는지 아실 건데요. 저는 처음에 이걸 보고 ‘멋지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와, 너무 쿨한데?’ 막 이렇게 생각했는데 당시 시민들은 어땠을 거 같습니까? 좋아했을까요? 맞아요, 엄청난 반발이 있었고 너무너무 싫어하고, 이것을 지지하는 정치적 세력과 반대하는 정치적 세력과의 대립도 굉장히 컸고요. 근데 당시 시장이던 한스 하이젤이 요셉 보이스의 지지자였어요. 어떻게 보면 바로 그 이유로 가능하게 된 프로젝트였다고 할 수 있겠죠. 
당시 카셀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를 싫어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나무를 심게 되면 주차공간이 줄어들어서 싫어했다고 합니다. 반면 요셉 보이스는 카셀이 생태라든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상업 중심적으로, 인간 중심적으로 개발되는 것에 반대해서 그것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어요. 사람들이 떡갈나무 묘목을 도시에 하나 심을 때마다 광장의 현무암 기둥을 하나씩 나무 옆에 세우기로 했죠. 즉 7,000개의 나무가 도시 곳곳에 심겨야지만 이 꼴보기 싫은 현무암 기둥들이 광장에서 없어지는 거예요. 요셉 보이스는 이게 굉장히 사회참여적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어요. 시민들이 자기 집 앞에 나무 한 그루씩 심어주면 얼마나 멋있겠습니까. 그래서 “지금부터 5년 후 카셀 도큐멘타 8회가 열리는 그날까지 7,000 그루의 떡갈나무를 다 심겠다.”고 공언했어요. 근데 애석하게도 86년에 요셉 보이스가 돌아가셨어요. 그때까지 심은 나무가 5,500 그루 정도 됐다고 해요. 요셉 보이스가 죽고 난 다음에도 프로젝트는 계속되어서 결국 8회 도큐멘타 때는 7,000 그루를 다 심기는 했어요. 
중요하면서도 슬픈 것은,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라든가 지원은 거의 없었다고 해요. 7,000 그루 나무의 90% 이상은 요셉 보이스와 그의 지지자들, 그리고 요셉 보이스가 운영했던 일종의 대학 같은 모임 학생들의 자원봉사로 다 채워졌어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 보면 굉장히 실패한 프로젝트죠. 왜냐하면 작가중심적이고 독선적인 프로젝트,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고 공유하지 않은 프로젝트니까요. 물론 요셉 보이스는 ‘어떤 방법으로 이걸 알릴까.’ 고민했고 노력했어요. 요즘 같은 SNS 시대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정말 많은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대학은 당연하고 그 광장에서도, 그리고 어디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라디오 방송도 나가고 굉장히 많이 어필을 했다고 해요. 반발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력했다는 거예요. 
시민들이 반대는 했지만 일단 나무는 심었고, 억지로 뽑아내지 않았고, 이게 30~4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렇게, 아름답고 무성한 숲이 우거지게 되었습니다. 
이거는, 제가 앞으로 보여드릴 다른 사례들과는 좀 달라요. 시민들의 동의라든가 주민의 협의가 그 작가와 프로젝트가 시행되는 5년 안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시대를 앞서간 작가의 혜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죠. 30년 동안 자라는 나무들을 보아온 카셀의 시민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나의 주차공간이 없으니 나무를 베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너무 수종이 일관되었다거나 하는 문제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사람들한테 내 생활공간 옆에서 이렇게 자연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느끼게 해주었다는 의미가 크지요. 이후 카셀에는 7,000 그루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숲이 생겨서 굉장히 녹지율이 높은 도시가 됐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작가의 신념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것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존재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죠. 누군가는 도와주고 심어주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30~40년이 지난 지금은 이렇게, 도시를 나무가 덮게 되었고요. 
더 많은 이야기는 떡갈나무 재단 홈페이지가 있으니 방문해보시길 바랍니다. 관련된 작가들, 아카이빙이 잘 되어있어요. 저도 독일어를 모르지만 아시다시피 구글에 번역기능이 있어서 한번 누르시면 어느 정도, 흐름을 아실 수 있는 정도는 잘 되어있으니 한번 방문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2-2. 네 번째 좌대
영국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장소가 어디일까요? 예, 맞아요. 트라팔가. 제가 너무 의도했나요? 트라팔가 광장은 영국의 제로포인트이자 교통의 요지이고요. 영국의 입장에서는 ‘아, 우리가 트라팔가 전쟁에서 이겨서 만든.’ 영화와 부귀의 상징 같은 곳이죠. 이곳에는 네 개의 좌대가 동서남북에 있었는데요. 넬슨 동상도 있고 윌리엄 4세도 있고, 그런데 그중 하나의 좌대가 150년 동안 재정적인 이유로 비어 있었어요, 그래서 런던시에서 생각한 거예요. 
‘이 네 번째 좌대를 채워야 되는데 무엇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좌대를 채울까?’ 
지금 현재 영국의 아이콘은 무엇인가. 베컴 잘 나갔으니까 베컴인가, 아니면 잘 나가는 디자이너?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선정된 것은 ‘현대미술작품을 저 재단 위에 계속 변화하면서 세우자’는 안이었습니다. 현대미술의 메카 같은 곳이기에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겠죠. 
처음에 런던시는 예술이 가진 경제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맞췄던 것 같아요. 그래서 소위 유명한 작가들이 작품을 올리고 하는 과정을, 한 3년 정도 시범적으로 여러 작품을 좌대에 올려보다가 이것이 단지 현대미술의 전시가 아니라 시민이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같이 토론할 수 있는 토론과 교육의 장인 공공예술의 장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아래 이 네 번째 좌대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공공예술이라면 공공과 예술이 기본적으로 담보되어야하지만 공공성에 주력하면 예술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예술적 전문성이 강화되면 공공하고 멀어지는 그런 결과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런던시가 선택한 방법은 전문가집단이 어느 정도 검증된 작가들의 작업을 세팅하면 시민들이 투표하는 것이었습니다. 후보 작품들이 선정되면 이 작품들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그런 것을 BBC라디오라든가 TV방송에서 계속 중계하고, 좌대에 올라갈 작품들을 작게 만들어서 전시해놓고, 시민들이 직접 내셔널갤러리와 시청에 가서 보면서 투표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최종 선정된 작업이 네 번째 좌대에 올라가게 되는데요. 첫 번째 작품은 마크 퀸의 ‘임신한 엘리스 래퍼’ 석상입니다. 
‘엘리스 래퍼’라는 여성은 실제로 런던에 살고 있는 분이고 구족화가입니다. 구족화가는 장애가 있어서 입이나 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말합니다. 이 당시 제가 마침 영국에 있었는데, TV에서 매일매일 이 석상 얘기가 나오는 거예요. 매일같이 엘리스 래퍼 얘기가 나오고, 마크 퀸이 나오고, 사람들이 싸우고 그러고 있는 거예요. 처음에 저는 ‘왜 이것이 문제인가.’ 궁금했죠. 그러니까 누군가는 ‘장애여성이 어떻게 영국을 상징하는 곳에, 넬슨제독의 동상과 함께 오를 수 있는가.’라고 분노하기도 하고, 그러면 마크 퀸이 던지는 화두가 ‘완벽한 바디란 무엇인가. 완벽함이란?’, ‘내 다리가, 비정상과 정상을 나누는 기준인가?’, ‘장애인에 대한 그런 시선들은 어디서 오나?’, ‘장애를 겪어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 아닌가?’ 이런 다양한 각도에서 얘기가 시작되고 토론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것은 저에게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 과정을 보면서 저 스스로도 장애인이나 그런 것에 대한 고려를 별로 안 했는데 그 방송들을 보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석상에 대해서 일기도 썼어요. ‘아, 정말 아름답다.’하고. 이 엘리스 래퍼상은 유명해져서 나중에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진출하고요. 2012년 런던 패럴림픽할 때 거대하게 다시 만들어서 세워집니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는데요. 안토니 곰리라는 작가의 프로젝트입니다. 100일 동안 24시간씩, 24시간이 아니라 24명에게 한 시간씩 이 위에 올라가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자유를 주는 거였습니다. 2,400명이 좌대에 올라갔겠죠? 누군가는 책을 읽기도 하고, 누군가는 1인 시위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예술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답니다.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가 올라가시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공공에 가려져있는 개개인의 개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광장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광장이라는 것은, 누군가 목소리를 내고 그것에 따라서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이니까요. 
제가 이 프로젝트를 가져온 이유 중에 하나는 관이 공공예술에 대해 얼마나 이해를 가지고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주는지가 인상 깊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점이 네 번째 좌대의 가장 큰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런던시청 홈페이지를 들어가보실까요. 홈피 자체도 굉장히 가독성이 좋게 돼있는데, 이렇게 네 번째 좌대 섹션이 따로 있어요. 현재 네 번째 좌대에는 무엇이 있는가. 과거에는 어떤 것이 있었고, 그런 것들이 자세하게 링크되어 있습니다. 방송 시간도 알려주고요. 그리고 가장 좋은 것, 저의 관심분야여서 그런 것도 있는데 여기에는 ‘fourth plinth schools awards’라고 아이들을 참여시키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참여시키는 리소스북도 올려져 있는데요. 어렵기로 유명한 현대미술을 아이들한테 어떻게 설명하고 지도할 수 있을까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시가 해결해주는 겁니다. 리소스북을 보시면 이 작품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고 작가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드는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모든 아이들이 예술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작품 자체만이 아니라 작품에서 말하는 주제들을 어떻게 토론하고 활용할 건지에 대한 예시도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엘리스 래퍼 석상을 가지고 장애에 대해서 얘기할 수도 있고요. 
중요한 것은 이처럼 아이들이 토론하고 서로 발표하는 과정입니다. 즉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한테 예술, 공공, 그런 여러 주제들이 교육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죠. 저는 이게 영국이 가진 가장 큰 미래의 힘이 아닌가. 공공예술, 현대미술, 어떤 그 이상의 것에서도 사회가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3. 골든게이트 하이츠 타일 계단
이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골드게이트 하이츠라는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 생각한 거예요. 시작은 간단해요. 내 집 주변에 기다란 계단이 있는데 사람들이 거기다 쓰레기를 버리고 죽은 나무를 갖다 버리고, 지저분한 거예요. 비행청소년들이 오는 그런 장소가 되고 낙후되니까 여기를 예쁘게 꾸미고 싶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습니다. 보통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하냐면 시에 민원을 넣고, 민원이 자꾸 들어오면 어떻게든 예쁘게 꾸며주겠죠. 그런데 이분들은 어떻게 했냐 하면, 자기들끼리 소소하게 주민협의회를 만들고 모금을 합니다. 시민모금을 통해서 두 명의 도자작가를 고용해요. 도자작가들은 시민들하고 같이, 이 계단에 어떤 이미지를 넣으면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같이 모여서 만든 거예요. 이렇게 시민들이 같이 모여서 도자기를 만들고 자원봉사를 합니다. 왜냐? 돈이 없으니까. 기본적인 건 모금하지만 그 외에도 나갈 돈이 많으니, 시민들이 와서 십시일반 도와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 계단을 도자기로 구워서 타일로 제작했습니다. 작가와 시민들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 구운 것도 있고 인근에 있는 타일회사들이 지원해준 타일도 있고요. 이렇게 완성된 계단의 길이가 82미터인데요, 이 타일 계단 프로젝트는 2년이 걸렸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2년에 걸친 계획이라는 건 공공예술에서 있을 수가 없겠죠? 근데 그 일이 여기서는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년에 걸쳐서 300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돈을 모아서, 1억이 넘는 돈을 같이 모아서 만든 프로젝트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몇 년 지나서 두 번째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첫 번째 계단 근처에 또다시 길고 버려진 계단이 있어서, 다시 타일 계단 프로젝트를 시작해요. 
저는 이분들이 두 번째 프로젝트를 했다는 점 때문에 이 사례를 소개하게 됐는데요. 보통 한 번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 하면 다 실패하잖아요? 근데 이분들은 발전하십니다. 3년 전에 자기들이 해봤을 때 무엇이 문제였는지 파악하고, 시민들 스스로가 자기를 조직화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유명한 비영리단체들의 모금전문가를 10명 정도 스카우트합니다. 그분들은 뭘 하냐면 모금만 신경을 쓰는 거예요. 그리고 모금전문가들이 일하는 과정, 프로젝트를 지역주민들한테 알리고 타일에 들어갈 도안들을 가지고 컬러링북을 만들어서 시민들한테 모금하고, 등등의 과정을 인터넷으로 아카이빙을 해서 올렸습니다. 예술가들은 지역의 동식물을 모티브로 도안을 해주고, 또 타일 하나하나도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서 어떤 사연을 가지고 만들었는지를 홈페이지에서 알 수 있게, 이런 식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됐습니다. 
두 번째 프로젝트의 변화가 뭐냐면, 당연히 모금액도 그전에 비해서 몇 배로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그전에 모금은 거의 100% 지역민들이었는데, 이제는 인터넷 아카이브가 생기니 이게 확산이 되고 세계 곳곳에서, 30%가 넘는 돈은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지원금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는 그런 게 없었는데 두 번째는 환경을 같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환경전문가를 한 명 같이 고용합니다. 지금도 계속 주변의 식물들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고, 지속적으로 자원봉사가 있어서 청소가 일정한 날에 계속 이루어집니다. 작가의 손을 거쳐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주민참여라는 의미를 지닌 계단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이 개선되며 생태적으로도 발전하는, 나비가 날아오고 재생된 환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항상 고민하는 지속성, 자발성, 주민들의 능동성 등에 대한 아름다운 사례이죠. 
여기도 마찬가지로 홈페이지가 굉장히 잘 돼있습니다. 첫 번째 프로젝트와 두 번째 프로젝트, 그리고 이 전반적인 과정에 대한, 자신들이 어떻게 조직화하는지에 대한 것까지 잘 되어있으니까 한번 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2-4. 파크 픽션
독일 함부르크 항구지역에 빈 공터가 있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가 지역의 이슈가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이 공간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영리,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 거예요. 당연히 돈을 가진 사람들은 이걸로 뭔가 더,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을 테죠. 그래서 시민들은 불법점거를 시작합니다. 사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독일이 가진 사회적 특성, 그러니까 빈 공간에 대한 점거가 가능하고 퇴거에 대해서 데모라든가 계속적인 저항을 했을 때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법이 있었으니까 가능한 건데요. 여기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우선 빈 공터에서 공원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공간에 모여서, 우리가 어떤 장으로서 여기를 쓸 건지를 시위하는 거죠. 삭막한 공터에서 공연도 하고, 시위도 하고, 그러고 계속 이 공간이 왜 시민들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되는지 싸운 겁니다. 이 과정에서 공원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런 가치에 대해서, 예술가들, 시민들이 함께 어울려서 ‘이곳에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가.’를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죠. 그리고 예술가들은 작은 키트를 만드는데요. 이게 사실은 불법점거상태잖아요? 판을 펼쳐놓고 뭘 할 수가 없으니까 액션키트라고 가볍게 가지고 다니면서, 마치 진짜 공원에 있는 것처럼 사진이 나오게 되는 그런 프로젝트들을 진행합니다. 이런 예술활동이 필요했던 이유는, 데모하고 점거하는 공터에 사람이 계속 모여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공터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개발되는 것을 포기하고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개장되기까지는 10년이 걸렸습니다. 그럼 그저 싸움, 구호만으로는 10년을 버틸 수가 없었겠죠. 그래서 아이들하고 같이 뭐도 만들고 아카이빙하자고 다니기도 하고, 그러는 여러 가지 노력 끝에 결국 성취한 거죠. 싸워서 이겨서 얻어낸 공원입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독일시민들의 굉장히 힐링과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아직도 여러 가지 예술퍼포먼스라든가 영화, 다양한 활동들이 일어나고 여전히, 그렇다고, 우리가 이겼다고 자만하지 않고 여전히 싸웁니다. 
재미있는 포인트는, 파크 픽션은 예술가가 아닌 시민이 주체가 된 프로젝트였는데요. 이들의 작업이 거꾸로,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던 카셀 도큐멘타에 초대됩니다. 그 외에도 여러 미술 프로젝트라든가 전시 등에 초대돼서 이 자체가 하나의 당당한 예술로 인정받게 된, 어떻게 보면 거꾸로 역전된 상황이죠.
 
지금까지 공공예술에서 ‘참여’와 ‘주체’의 문제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집을 떠나서 거리로 나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주체인가요? 시민, 예술가, 관, 혹은 그 외의 어떠한 입장에서 어떤 주체가 돼서 밖으로, 광장으로 나가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 나의 목소리를 높이고 싶으신지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3. 환경운동_에코

반갑습니다. 저는 성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환경운동가이기도 하고. 환경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 지역에 대해서 소개를 해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이렇게 예술가들이 많은 자리일 줄은 몰랐습니다. ‘예술가들에게 어떻게 이 환경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들기 시작하네요. 
요즘에 환경의 영역에서 도시재생과 마을 만들기는 굉장히 큰 이슈죠. 예술 쪽에서도 아마 이 도시재생 부분은 굉장히 큰 관심사일 거라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환경뿐만 아니라 도시계획부터 시작해서 건축, 예술, 대부분의 영역들에서 도시재생과 관련해서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는데, 사실 해답을 찾고 있지는 못해요. 이 상황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것들을 계속 고민하고 있는 상황인 듯합니다.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를 할 때 저는 있잖아요. 예술가 분들이 도시를 바라보고 공공예술을 하실 때 이러한 부분들이 좀 강조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을 좀 생각하면서 같이 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례를 먼저 하나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1970년 미국 뉴욕인데요. 아마 예술가 분들은 알고 계실 상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조 크리스티’라는 그림 게릴라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친구들이 밤에 쓰레기를 트럭으로 실어내고 그곳에 꽃을 심습니다. 너무 좋지요. 그런데 불법침입이라고 고발당합니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고민을 했겠죠. ‘아니, 사심 없이 우리 돈을 들여서 노력과 헌신으로 했는데 이거 웬일?’ 그러면서 그 친구들이 한 얘기가 이런 거죠. “아무리 자기의 땅이라 해도 이웃에게 불편을 끼치고 관리를 하지 않은 채 방치하는 것은 땅에 대한 권리가 없다. 우리에게 불법침입이라는 형태로 규제할 수 없다.” 이러면서 소송으로 가게 됩니다. 이 소송이 7년간 계속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게 돼요. 이 친구들이 한 행동이 법원에서 봤을 때도 무언가 딱히, 뭐라 말하기가 좀 그런 거예요. 그러다 뉴욕타임즈에서 7년 동안의 소송 내용들을 “이상한 소송”이라는 타이틀로 전면에다가 기사를 싣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내용이 공개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고. 자, 그러면 법원이 어떻게 결론을 내렸을까요? 누가 이겼을까요? 
맞습니다. 땅 주인이 이겼습니다. 어쨌든 땅에 대한 법적인 권리는 땅 주인이 가지고 있는 거여서 땅 주인이 이기긴 했는데요. 뭐 소송의 비용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땅 주인이 그 땅을 더, 잘 관리하여야 한다는 형태로 판결이 났어요. 그러고 나서 이제 뉴욕시가 나서게 됩니다. 땅 주인한테 땅을 팔라고 합니다. “당신들이 관리를 못할 거 같으면 우리 시가 이것을 할 테니 파십시오.” 그렇게 해서 뉴욕시가 이 땅을 사게 되고요. 공원으로 조성이 됩니다. 그리고 젊은 예술가들에게 이 땅을 공공적인 목적으로 이것들을 계속 관리할 수 있게끔 그 권한을 내어주게 되는, 공공의 이런 영역에서는 큰 이슈가 됐던 그런 일이었습니다. 
이때 나온 말이 ‘게릴라 가드닝, 게릴라 미술’이라는 표현입니다. 남의 땅에다가 허락을 구하지 않고 불법으로 점유한 다음에 정원으로 꾸미는 행위입니다. 우리나라는 있잖아요, 이거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길거리에 꽃을 심고, 그리고 그곳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들을 진행하고 있죠. 이건 게릴라 가드닝에서 많이 쓰는 사진 중의 하나인데요. 길에다가 블록 하나 빼서 거기에 꽃을 심는 거예요. 근데 이 꽃 하나가 굉장히 큰 영향을 주죠. 무심히 지나가던 사람들이 꽃 하나 있음으로 해서 주춤, 한번 서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누가 이것을 심었을까?’부터 ‘얘는 여기서 밟히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건 누가 관리를 하지?’ 뭐 이런, 많은 것들을.
저는 오늘 태평동을 생각하고 이런 내용들을 만들었어요. 태평동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지역의 문제들이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공간이 많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좀 담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쓰레기 같은 전형적인 문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 쓰레기가 하나 탁 떨어져있으면, 그다음부터는 사람들이 가면서 하나씩 툭툭 던져서 어느 순간 그게 산이 되는. 근데 이런 공간들이, 제가 봐서는 관리의 문제이고 관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환경에서는 이런 부분들을 막 정리해가지고 이렇게 깨끗하게 하자는 캠페인이 될 수 있고, 또 예술에서는 그런 곳에 작품을 놓는다든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할 수도 있겠죠. 
저는 예술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무엇을 도시 안에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닌 거는 알아요. 예를 들어서 작년에, 저는 탄천과 성남 주변에 있는 산들에서 굉장히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인데요. 탄천에 어떤 분이 예술작품이라고 이렇게 작품을 하나 탁 만들어놓은 거예요. 근데 저는 작품을 보고서 ‘장마가 되면 쟤가 견딜 수 있을까?’부터 시작을 해서 굉장히 다양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천관리과에다가 그랬죠. “저 작품은 장마가 오면 쓸려 내려간다. 쓸려 내려가지 않더라도 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쟤는 쓰레기더미가 될 거다.” 왜냐하면 물이 한번 지나가면 상류에 있던 쓰레기들을 싹 훑어서 내려오는데 거기에 작품이라는 것이 있으면 쓰레기가 거기에 걸려요. 그래서 ‘작가들이 지역을 알고, 그곳의 자연환경적인 생리를 좀 알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작품이 아깝다. 다른 곳에 갔으면 훨씬 돋보였을 텐데.’ 뭐 이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좀 더 잘 알면 오히려 시너지를 나타내면서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태평동에 있는 공공예술소 앞에도 보면 공간이 조금 있습니다. 그리고 본시가지 안에는, 집들을 시가 사고 그곳들을 정리하면서 공간들이 이렇게 구석구석에 띄엄띄엄 있어요. 우리는 그것들을 빈 공간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시민들한테 물어요. “이 공간을 무엇을 했으면 좋겠습니까?” 시민들의 90% 이상 대답은 주차장입니다. 그런데 주차장이 있음으로 인해 공기가 더 안 좋아지는 거거든요.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도시 안에 이런 것들을, 도시의 환경의 질을, 삶의 질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있잖아요. 주차장의 형태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발상들을 시민들한테 넣어줄 수 있어야 하는 거거든요. 우리는 다양한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양한 것들을 우리가 아직 시민들한테 보여주지 못한 거예요. 저는 이것들이 환경교육으로 다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교육은 있잖아요, 계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하자.”라고 하면 가고 싶지 않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술적인 부분들로 해서 사람들이 다른 것을 생각하고 이 공간 안에 주차장이 아닌, 차가 들어와서 서 있는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하자고 하면, 있잖아요?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3년 전, 앞서 말한 본시가지의 띄엄띄엄 있는 공간들에 나무를 심어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공원을 만들어달라고 얘기했어요. “나무가 있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원을 만들어주세요.” 그랬더니 시에서 안 된다고 했어요. 그곳에 공원이 들어오면 불량청소년이 온다는 거죠. 불량청소년이 술을 마시고 밤에 고성방가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시가 어떻게 했냐면, 태평동의 몇 곳을 보면 초록색 펜스를 높게 쳐놓고 나무를 그 안에 빼곡하게 심어놓은 곳들이 있습니다. 그게 저희가 나무 심어달라고 요구를 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너무 황당했습니다. 저희가 나무를 심어달라고 한 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거든요. 도시 안에 있는 공기를 좀 깨끗하게 하면서 초록도 필요하고, 공간 안에 나무도 없고 생명이 없으니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나무를 심어달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게 펜스를 높이 쳐놓고는 나무를 빼곡하게 심어놓고. 그걸 보고는 ‘아, 이렇게 제안해서는 안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아, 환경과 예술이 접목을 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역에 좀 이렇게 안다는 예술가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 이거 할래요, 저거 할래요?” 그랬지만 예술은 돈이 많이 들더라고요. 아직까지는 한계들이 있었고요. 제가 봐서는 지금 본시가지의 도시재생에서는 지역의 환경들을 살려내는 것들. 근데 그 환경들을 살려내는데 있어 잘 풀어낼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한데, 그 도구가 공공예술이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성남은 우리나라의 첫 번째 계획도시입니다. 1970년도에 정권이 만들어낸 첫 번째 신도시고요. 이 신도시가 만들어진 이유는 청계천을 깨끗하게 정비하기 위해서 그곳에 살고 계시던 분들을 어디로 이주를 시켜야 됐죠. 그러면서 잡았던 공간이 지금 성남 본시가지 구간이었고요. “가서 먼저 살아라. 너희들이 가서 자리를 잡고 있으면 정부가 전기도 넣어주고 수도도 넣어주고 그리고 모든 도시의 제반시설을 넣어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그래서 청계천에 계시는 분들이 이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 오신 거죠. 왔는데 정말, 산하고 물뿐이 없는, 아무것도 없어. 전기도 없고. 그래서 이분들이 맨땅에다가 텐트 치고 항아리에 물 받아서 생활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이 가장 자리 잡고 싶어 했던 곳이 하천 주변이에요. 물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하천 주변으로 사람들이 계속 모이게 된 거죠. 여기서 물을 마시고 빨래를 하고 뭐 다 여기서 했죠. 그러다가 도시의 규모가 커지고 자동차 이용이 늘어나면서 길을 만들어야 되는데 공간이 없는 거예요. 모두가 자기 살 수 있는 공간 20평씩을 다 나눠가졌고 도로라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제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도로를 만들어야 됐고, 도로를 만들면서 하천을 모두 다 덮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곳의 환경이 굉장히, 예전과 다르게 열악해지기 시작을 한 거죠. 
지금 이쪽, 태평동은요, 원래 이 지역이름이 탄리입니다. 왜 탄리였냐면, 숯을 굽는 곳이었어요. 굉장히 많은 숯을 구워서 여기가 숯골이었습니다. 위쪽 영장산의 숲에서 나무를 베어다 구웠던 것이죠. 그런데 숯을 굽는 마을은 또 어떤 조건을 갖춰야 되냐면 하천을 끼고 있어야 합니다. 한양으로 숯을 이동해야 됐기 때문이죠. 그래서 독정천과 단대천, 탄천에서 숯을 날랐습니다. 성남 이마트 사거리 있죠? 거기 이름이 숯골사거리입니다. 옛날 명칭을 그대로 가지고 있죠.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던 독정천, 지금 우리 본시가지 안에서 독정천, 단대천, 대원천은 복개가 돼있습니다. 하천이 도로가 된 거죠. 

1970년대에 만들어진 성남은요, ‘선입주 후개발’입니다. “무조건 들어가서 살면 개발해주겠다.” 라는 형태였고요. 분당은 두 번째, 대한민국의 두 번째 신도시죠. 1990년도에 들어오게 된 이 분당은 ‘선개발 후입주’입니다. 그러다보니까 분당은 먼저 토지정리를 해요. 수도, 전기 등등의 모든 제반시설들을 도시 안에 깔아놓고 아파트를 올리고, 그래서 이 공간 안에 45만의 인구가 살 수 있게끔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그리고 2000년도, 2000년도에 세 번째 도시인 판교가 들어옵니다. 이것도 정부 주도하에 들어옵니다. 순차적인 도시개발이 일어나다보니까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거주양식과 분당에 살고 있는 분들의 거주양식과 그리고 지금 생긴 판교에 살고 있는 분들의 거주양식이 굉장히 달라요. 
성남시는 이제 98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요. 곧 100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100만 인구를 채우기 위해서 시장님이 엄청 노력을 많이 했는데요. 저는 100만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삶의 질은요, 곧 공간의 여유가 가지고 있는 있잖아요, 여백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인구가 늘어난다고 경제의 규모가 늘어갈 거 같지만, 실제로 제가 생각하는 것은 공간이 한정되어있는 곳에서 인구가 늘면 그만큼 삶의 질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분당이 만들어지면서 45만이 들어와서 살게끔 도시계획이 됐다고 얘기를 했잖습니까? 근데 그 45만이 살 수 있는, 환경시설들 있잖아요. 사람이 살면 쓰레기가 생기고 사람이 물을 쓰면 폐수가 생기고,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들요. 다 본시가지 안에다 다 집어넣어놨습니다. 그러면서 분당 시민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분당과 성남 본시가지는 분리해야 된다는 이런 얘기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그 얘기는 정말 어리석은 거예요. 분당은 스스로 도시의 기능을 할 수 없는 도시입니다. 본시가지와 절대 분리하면 안 돼요. 이 본시가지를 계속 보다듬어서 그러면서 가야 되거든요. 그리고 본시가지도 분당의 수준에 계속 따라갈 수 있게끔 그런 제반시설들을 계속 만들어줘야 되고, 이런 문화적인 것들도 계속 올라갈 수 있게끔 해줘야 되고, 그런 인큐베이팅을 계속 본시가지 안에서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아마도 공공예술소라는 것들을 계속 본시가지 안에 넣어놓은 것 같습니다. 본시가지가 이제 도시재생을 해야 되는 시기가 됐기 때문에 예술과 잘 만나서 이것들이 이제 같이 상승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성남시도 바라면서 이런 것들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희 성남시는 세 개의 얼굴을 가진 도시라고 많이들 표현합니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도시, 1990년도에 만들어진 도시, 그리고 2010년도에 만들어진 도시가 어떻게 하면 서로, 비록 다른 성격을 가졌지만 잘 화합해서 갈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역이 계속 분화되고 불균등이, 불균화가 계속 심해질수록, 있잖아요, 도시 안에  조화로운 삶의 형태들이 계속 깨지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어떻게 하면 도시가 잘 공존할 수 있을까’를 이야기하고 있고요. 이런 마을 만들기와 공동체들이 공공미술과 같이 만나서 공간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런 하나의 좋은 도구로 사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4. 도시재생_심장

안녕하세요? 오늘 제가 준비해온 자료는 어떤 거냐면, 도시재생에서의 예술가들의 역할, 혹은 문화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을 하셔서 그것에 대해서 좀 준비를 해봤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순서는 이렇거든요. 첫 번째는 재미없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좀 이론적인 이야기가 있고요. 두 번째는 국내나 국외에서 어떤 사례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좀 말씀드리고요. 그리고 ‘도시재생 속에서 문화예술이 과연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4-1. 재미없을 수 있는 이야기 
저는 ‘공공예술’이나 ‘공공디자인’이라는 단어도 좋아하기는 하지만 오늘은 ‘문화예술’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겠습니다. 그 이유는 시민은 이게 공공디자인이든 공공예술이든 별로 관계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등소평이 중국을 해방할 때 ‘흑묘백묘’ 얘기를 하잖아요? 어떤 놈이든 상관없이 인민만 잘 먹여 살리면 되듯이 도시환경만 좋게 만들면 어떤 놈이든 상관없거든요. 그래서 구분하지 않고 그냥 문화예술로 통칭해서 쓰겠습니다. 도시재생은 1950년대부터 시작을 합니다. 1950년대는 재건축이었거든요? 그리고 지역활성화, 재개발. 익히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처음에 도시를 다 밀고 만들잖아요? 근데 그때 주체들이 조금씩 다릅니다. 맨 처음에는 정부가 전부 다 했고요. 그다음에 조금 부담되니까 민간개발이 들어옵니다. 재개발까지 들어오고요. 그러고 나서 1990년대 이후에 도시재생들이 들어오게 되는데, 주요 관계자가 좀 다릅니다. 1990년대 도시재생에서는 파트너십. 그러니까 이해관계자들의 것에 중심이 됐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주민참여형태로 바뀝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런 형태의 도시재생이라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추진목적은 이렇습니다. 재건축, 재개발, 재활용 뭐 이런 걸 가지고 있는데 추진기관은 처음에는 정부에서 시작했다가 정부하고 민간이 더했다가 이제 주민참여형태로 해서 정부와 민간이 합쳐진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원도심들은 공동화와 쇠락화되어 있었죠. 그것들을 어쨌든 공공성을 가지고 지속성을 가지자고 했다. 뭐 그런 목적들을 가지고 있는데 비어있는 것들을 쓰임으로 하고, 그리고 비어있는 것들을 대물림하는 것들을 부활하겠다는 차원인데, 여기서 큰 차이가 있는 지점은 여기입니다. 건축하고 도시재개발은 삽입하는 방식이었죠. inserting. 근데 도시재생은 엮는 방식입니다. 지역의 자원들을 엮고요. 그러다보니까 삽입하려면 빈 공간들을 만들어야 되는데 엮는 방식은 빈 공간을 만들 필요가 없죠. 그 안에 있는 자원들을 발굴하고, 그 자원들의 역할을 바꿔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도시는 되게 많은 변화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 산업도시에서 후기산업도시, 지금은 문화도시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고, 대부분 광역에서의 공공예술 프로젝트들이 이것을 주고자 많이 진행을 합니다. 그래서 산업도시는 품량이나 생산지수, 노동자 같은 거, 그러니까 생산력 같은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면 후기산업도시는 품질입니다. 그리고 관광, 주가지수, 마케팅 뭐 그런 것들인 거죠. 산업도시는 오지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공공예술, 문화도시가 공공예술인데 사회적 삶을 받쳐주는 형태로 바뀝니다. 아까 다른 분이 또 미술작품 말씀하셨는데요.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거든요? 그런 것에 근거가 돼서 공공조형물이 만들어지고 또 선택적기금제라는 것도 진행하고 있고요. 
그러면 도심에서 문화전략들은 왜 쓰이느냐? 문화경제가 현재 도시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고 또 그것을 활용해서 도시성장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가능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관계들을 분류할 수 있습니다. 우선 문화예술재생화가 있습니다. 아마 이건 다들 아시는 동네입니다. 문래동. 그리고 만리동에 예술인 마을이 있습니다. 아이쿱이라고요. 또 되게 드문 케이스인데요, 문화예술하고 공동창업마을이 있습니다. 정말 드물거든요? 화천에 예술텃밭이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 속 문화예술이 있는데요. 이거 어떤 거냐면 장흥 아트밸리나 공공공간이나 전주의 청년몰 같이 원래 마을이 있었고 소규모로 예술가들이 들어간 케이스라고 분류해볼 수가 있고요. 조성된 문화예술마을. 익히 잘 아실 겁니다. 이화 벽화마을이라든지 감천동 문화거리라든지 인천 아트플랫폼 같은 것들. 
대체로 실패사례가 많습니다. 요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뭐 그런 얘기하잖아요? 예술가들 스스로 농담 삼아 자기들 스스로 젠트리파이어(gentrifier)가 된다고. 스스로 쫓아내는 사람이 된다고 해서, 하여튼 젠트리파이어가 되기도 하고요. 예술가가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주민하고 융합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들이 소요가 되고요. 마을 속 문화예술 같은 경우에도 역시 성공가능성이 낮습니다. 이것의 문제점 중 하나가 뭐냐 하면, 민간이 설립하고 운영주체가 관으로 왔을 경우에 깨지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또 조성문화예술마을은 아시다시피 주민들이 타자화가 되죠. 그러니까 동물원에 있는 동물과 같은 그런 형태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집주인은 좋아하는데요. 원주민, 이주민, 선주민으로 나누면 원주민들은 좋아합니다. 근데 이주민이나 선주민들은 불편해합니다. 대부분 세입자니까요. 그런 것들 때문에 본래의 의도들을 훼손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이 있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4-2. 사례들
먼저 서울입니다. 도시재생 선도지역이기도 하고요. 아참, 도시재생 우리나라 역사에 10년이 채 안 됐습니다. 10년이 안 됐는데 어쨌든 서울이 제일 먼저 이끌어나가고 있고, 그 이끌어나가고 있는 목표는 “잘 살고 행복하고 함께 만들자.” 라는 구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축은 이렇거든요? 창조산업으로 잘 먹고 살겠다. 지역산업으로 잘 먹고 살겠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소외지역을 활성화하겠다. 그 세 가지 숙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전은 이런 거죠. 지역 주체성이고요, 그다음에 역사자원을 활용하고요.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겠다. 뭐 그런 것들인데요. 오늘 제가 주요 말씀드릴 부분들은 여기 보면 세운상가하고 여기 창동·상계지역, 그리고 창신·숭인지역. 먼저 창신·숭인부터 말씀드릴게요. 

창신•숭인은 주거환경개선 그 다음에 지역경제 활성화, 역사문화자원 활성. 이 세 가지 축으로 진행이 됐습니다. 주거환경개선은 노후주택개량, 그리고 기반시설정비, 공동이용시설 확충. 그런데 아마 여기 성남시도 주거환경재생지역 선정이 돼서 비슷한 사업을 진행할 거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업과 다른 것이 대부분 SOC에 투자를 하거든요? 기반시설. 그래서 길을 좀 깨끗하게 만든다든지 어두운 길거리를 바꾼다든지, 뭐 그런 것들이 많이 진행될 겁니다. 이것도 비슷한 개념에서 진행됐고요. 올해 다시 또 선정이 돼서 다시, 좀 더 큰 예산들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여기 창신동이 잘 아시다시피 봉제공장이 되게 많습니다. 그래서 봉제공장을 중심으로 한 봉제산업활성화, 그리고 경제활동지원, 자원가치의 활용이고요. 여기가 서울성곽을 끼고 있거든요? 그리고 백남준이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박수근도 그 동네에서 태어났고요. 김광석도 그 동네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역사문화자원들을 가지고 이 지역들을 활성화해보겠다. 뭐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데요. 예산들입니다. 근데 제가 빨간표를 해놓은 게 뭐냐 하면 예술문화하고 지역재생인데 이것입니다. 4, 5번이에요. (매우 적은 금액) 그러니까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그런 아주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는 예술문화 관련 프로젝트들이 어떤 게 있느냐. 낙산이라는 데가 있어요. 낙산에 가면 꼭대기에 조그마한 놀이터들이, 놀이터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공원 같은 게 있습니다. 그 공원에서 장터를 엽니다. 꼭대기에서 연다고 해서 꼭대기장터고요, 창신·숭인 도시재생공모사업의 지원을 받아서 진행하고요. 한 4시간 정도 진행을 합니다. 근데 생각보다 꽤 많이 활성화돼있습니다. ‘낙산에 사람들이 올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물론 작은 공간입니다만 사람들이 꽉 찰 정도로 많이 활성화돼있는 케이스 중의 하나입니다. 
두 번째, “백남준기념관”입니다. 백남준기념관은 최욱 선생이 설계를 했고요. 원래는, 이 자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백남준의 집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백남준은 정말 잘 살았어요. 전용기 갖고 있었고요.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유기전 행수라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잘 살았던 집안이거든요? 그래서 그의 집안을 뭐라고 불렀냐면, 사람들이 ‘큰대문집’이라고 불렀어요. 백남준이 어렸을 때의 일기들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자기 집안에 있는 산에 올라가서 보니 마을이 다 보이더라.’ 그러니까 그 정도로 큰 집안이었거든요. 아마 이 일대가 전부 다 그의 집이었으리라고 보이는데, 어쨌든 그중에 하나를 서울시에서 매입을 해서 백남준기념관으로 만듭니다. 여기서 백남준과 관련된 인문학적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고요. 또 카페가 있습니다. 주민커뮤니티로 운영합니다. 
그리고 공공공간 이러한 데가 있고요. 자투리 천이 굉장히 많이 나오니까 그 자투리 천을 이용해서 상품들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회적기업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여기서 표방하는 것이 제로웨이스트입니다. 소통공작소라는 데가 있고요. 이목성 선생이라는 분이 같이 디자인을 하게 됐었고요. 여기서 종로문화재단이랑 같이 weaving & solving이라든지, weaving & solving은 프리마켓을 운영하는 팀이랑 같이 하는 겁니다. 이게 되게 의미 있는 건데요. CRC, 도시재생회사거든요? 지역재생기업이라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최초 1호입니다. 물론 기업이라면 이걸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되니까 굉장히 어려운 지점도 있습니다만, 그것들을 떠나서 지역들을 살려내는 것으로 주민들과 같이 먹고 살 수 있겠다는 노력들을 한다는 지점에서 보면 굉장히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세운상가입니다. 원래 세운상가가 되게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아까 청계천에서 이주하신 분들이 이 지역에 계셨다고 하잖아요? 아마 이게 시점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운상가가 있던 자리가 일제시대에는 방화로였어요. 비어있었거든요? 전쟁이 나거나 화재가 났을 때 더 이상 불이 번지지 말라고 비워놨던 곳입니다. 그러다 해방이 되면서 빈민촌들이 들어섭니다. 사창가가 들어서고요. 그걸 불도저라고 하는 시장이 밉니다. 밀고 김수근이라는 사람과 이걸 만들거든요? 원래 처음 계획했을 때는 유토피아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여기 옆에 데크들이 보이는데요, 이 데크를 유리관을 싸서 녹지를 만들려고 하고요. 그 녹지 사이도 사람들이 다니면서 전자제품을 팔거나 아니면 상가들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에 이 세운상가의 아파트들은 정말 비싼 아파트였고요. 어쨌든 이거를 하다가 예산과 기술 문제로 그걸 실행 못하고 그대로 방치가 되면서 우리가 익히 아는 세운상가들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세운상가를 상대로 하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이라든지, 대부분 음란물들을 사러가기 위한 그런 곳으로 많이 비춰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걸 재생하겠다고 나서면서 주민들과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왜 그러냐면 주민들은 반반이 나눠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야, 빨리 재개발해라.” 다른 한편으로는 “니네 또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왜 그러냐면 오세훈 시장 때는 이거를 없애고 녹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박원순 시장이 들어오면서 이게 달라지는 거죠. 그러다보니 상인들은 굉장히 많은 반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거버넌스를 운영하게 됩니다. 근데 이들이 되게 영리했습니다. 사람들한테 접근할 때 어떻게 접근하냐면 초상화를 그려줍니다. 그냥 찾아가도 아무런 얘기도 못하게 하니까 초상화를 그려주는 조건으로,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이야기들을 끄집어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 상대방의 동감들을 이끌어내거든요? 그러면서 거버넌스를 만듭니다. 이렇게 초상화 인터뷰들을 하고요. 그러면서 그런 결과물들, 설계공모와 여러 가지 결과물들이 모아져서 현재와 같은 그런 세운상가가 만들어지게 되죠. 
현재도 여전히 문제는 많습니다. 쌌던 임대료들이 지금 올라가고 있고요. 얼마 전에 제가 사무실을 좀 얻으려고 알아봤더니 처음에는 50만 원이었다가 그다음 날 가니까 70만 원을 부르더라고요. 그 정도로 이들도 현재 ‘임대료가 오를 것이다.’ 라는 수요들이 굉장히 많은 상황인데요. 다만 재미있는 것들 중 하나는 수리수리협동조합이라고 해서 이곳에 많은 장인들이 계시니 그 장인들한테 일자리를 제공하고 사람들이 수리하기 굉장히 어려운 물건들을 수리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도 입주하고 있고요. 이건 제가 했던 프로젝트입니다. 200/20라든지, 아시죠? 200은 보증금이고요. 20은 월세입니다. 500/35 이런 게 있습니다. 근데 대부분 나갔고요. 몇 군데 안 남았습니다. 호랑이라고 하는 펍카페도 있고요. 여기 힙한 곳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서서울교육센터라는 데가 있습니다. 서서울교육센터는 도시재생과는 좀 다른데 오래 된 전시장을 리모델링한 케이스입니다. 이것은, 다른 리모델링 공간 같은 경우에는 복합문화공간을 많이 지향합니다만 뚜렷합니다. ‘서울에 있는 아이들이 굉장히 마음이 아프니 그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문화예술로 다 보듬어주겠다.’ 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고요. 철저하게 문화예술교육만 합니다. 그래서 여기 보시면 서울시가 조성하고 현재 서울문화재단이라는 데서 운영하고 있고요. 이런 축제들을 개관했을 때 진행하고 현재는 거의 다 교육프로그램만 진행합니다. 

그리고 시골로 내려가겠습니다. 홍성입니다. 홍성은 커뮤니티에 대한 예술 프로젝트가 활성화돼있다기보다는 커뮤니티 자체가 활성화돼있다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원래부터 취미문화단체들이 굉장히 잘 돼있는 편이고요. 그리고 그들이 요구를 해서 ‘홍성통’이라는 걸 만듭니다. 이 홍성통은 홍성군 농촌지역 발전을 위한 민간협력거버넌스라고 하고요. 홍성하고 통한다고 해서 홍성통이라고 지었는데요. 예전에는 이랬습니다. 사업을 하나 하려고 하면 건설교통과도 찾아가야 되고 농업기술센터, 분재과, 기타등등 다 찾아갔어야 됐습니다. 그걸 이렇게, 다 같이 모이자고 한 겁니다. 그러니까 한 군데서 좀 해결이 되겠죠. 공공미술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도로 하나 바꾸려고 하면 굉장히 힘듭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관할은 토목과고요. 차선은 어디 관할이냐면 경찰서 관할입니다. 그리고 전기, 만약에 거기 기둥이 하나 들어와 있다. 그러면 이게 또 달라집니다. 근데 이렇게 모이면서, 어쨌든 그간 굉장히 우수성과들을 내고 있고요.  처음에는 5개 부서, 6개 단체였다가 지금은, 여기 보면 2016년에 10개 부처, 120개 단체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이게 실제로 행정안전부의 우수사례로 선정이 돼서 상을 받기도 합니다. 엄청난 성과라고 보이죠. 

또 하나는 연남동입니다. 연남동이 요즘에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장소이기도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지키려고 하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프리마켓을 운영하는 일상창작예술센터에서 연남동 마을시장, ‘따뜻한 남쪽’이라는 것도 운영하고 있고요. 형태는 프리마켓이랑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연남동이라는 테마들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는 차이점들이 있는 거고요. 

그리고 이건 영국입니다. 영국의 와핑프로젝트라고 하거든요? 수력발전소를 한 개인이 매입을 합니다. 근데 매입을 할 때 얘들도 쉽지도 않았나 봅니다. 1991년에 ADDC라는 개발회사가 있거든요? 거기 대표가, 호주 출신 아트디렉터 줄스 라이트한테 여기를 소개합니다. 소개하니까, 원래 이쪽에서는 여기를 플랏이라고 해서 되게 저층, 우리나라로 따지면 저층 빌라를 만들려고 했었어요. 근데 이 사람이 보니까 “여기는 빌라 만들 게 아니라 이걸 그대로 활용하면 훨씬 더 좋겠다.” 라고 해서 운영권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소송을 겁니다. 그리고 긴긴 소송 끝에 확보를 하게 되고요. 72억원 정도를 투자해가지고 만듭니다. 2000년대에 개발하거든요. 여기에 재미있는 점 하나는 레스토랑이 갤러리로 바뀌기도 하고요. 그리고 공연장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와핑프로젝트의 레스토랑은 런던에서 10대 안에 들어가는 음식점이다 그러면 꼭 손에 꼽히거든요. 물론 이 케이스는 도시재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성공적이지만 커뮤니티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실패한 사례입니다. 왜냐하면 와핑프로젝트는 주변 커뮤니티랑 소통하지 않거든요. 그런 지점을 염두에 두시고 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어쩌다 가게’입니다. 사이건축이라는 데서 만들고요. 여기가 요즘에는 좀 많이 힘들어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공간이 작아서 매출이 생각보다 안 나와서요. 하지만 같이 상생하자는 측면에서 보자고 한다면 건축주와 임대자의 굉장히 의미 있었던, 그리고 의미가 있는 그런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5년 임대조건으로 하고요. 안정적인 월세 수준, 그러니까 적절한 월세 수준이죠. 거의 살인적이거든요. 여담이지만 3년 전에 홍대 상인회들 만나보면 말도 안 되는 임대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월 임대료가 1,200만 원. 되게 큰 데였거든요? 거기 상인들 얘기로는 24시간 사람들이 줄서도 그 임대료 못 채운다고 합니다. 그런 살벌한 동네인데 어쨌든 같이 살겠다고 해서 사이건축에서 이런 것들을 만들었다는 것이 굉장히 의미가 있지 않나 해서 보여드렸습니다. 

문래동입니다. 너무나 잘 아시죠, 여기도? 문래동이 1960년대에 조성이 됩니다. 그리고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굉장히 활성화되죠. 그래서 2층에 사무실들이 꽉꽉 차 있습니다. 근데 이 꽉꽉 차 있던 것이 IMF하고 90년대의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빕니다. 그때 대학로나 홍대에서 임대료가 굉장히 올라서, 임대료가 비싸서 쫓겨났던 예술가들이 이곳에 들어오거든요? 2층에 들어갑니다. 그 예술가 중의 하나가 저였습니다. 제가 여기 2000년대 초반에 썼었거든요, 작업실로. 그렇게 해서 현재는 250여 개의 공방과 400여 명의 예술가들이 입주해있습니다. 장르도 굉장히 다양하고요. 보통 저희가 아는 문래동은 이 동네입니다. 지금은 2가와 4가로 더 펼쳐져있습니다. 그리고 이 동네는 예술가하고 거기 사는 분들이 굉장히 치열하게 좀 싸우는 게 있거든요? 왜냐하면 시끄럽다고 싸우고, 사진 찍는다고 싸우고 그런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여기서 많이 빠져나가는 입장이고, 여기에는 대신에 카페나 상업시설들이 많이 들어가고 있고요. 이 길을 중심으로 해서 이쪽으로 예술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쪽은 상대적으로 상황이 달라서 예술가들한테 호의적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냐면 여기는 대부분 원자재를 파시는 분들이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어느 정도의 자본력이 있으신 분들입니다. 자기 건물도 있고요. 이쪽은 좀 다릅니다. 기술을 파는 시장이거든요? 다 소규모예요. 그리고 임대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들이 남아있기도 해서 예술가들한테 상대적으로 호의적인데요. 여기도 역시 2015년에 서울시가 내놓은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에서 예상지역으로 분류된 지역입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공동체를 만들어서 건물을 매입하려고 하는 움직임도 있는데, 여기가 중공업단지여서 사려고 하면 굉장히 큰 필지를 사야 되거든요? 예술가들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4-3. 무엇을 하라고
그러면 도시재생 속에서 문화예술들이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대부분 이런 시각들이 있을 겁니다. 먼저 경제적 쇠퇴의 해결책이라고 생각을 하시죠. 또 정치적 표현의 수단. 이게 정치적 표현의 수단이라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얌전한 정치적 표현수단입니다. 그러니까 정권에 반하지 않는. 그리고 공익실현의 기회, 환경개선의 수단, 비즈니스, 상징, 그리고 일상생활로서의 문화 같은 것들이 있는데요. 이게 항상 충돌이 납니다. 예를 들면 행정관은 지역정체성을 강화하거나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싶고, 또 문화유산과 그리고 그런 것들을 보존하거나 발전시키고 싶고, 또 예술창작을 진행하고 싶은데 시민은 제 1 당면과제가 이거겠죠. 집값상승이나 경제적 이익확대. 그러면서 간혹 그런 분들이 계십니다. 여가생활이나 쉽게 보내려고 한다. 근데 예술가는 또 다르거든요. 
예술가는 ‘난 여기 안정적으로 작업하고 싶은데 왜 자꾸 건드려?’라고 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있으시고요. 또 한편으로는 ‘다른 예술가들과 좀 교류를 하고 싶어.’ 그런 분들도 계시고요. 또 대중과의 소통이나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작품구매까지 연결하는, 예. 그렇고요. 또 많은 경우일 겁니다. 기타 공공재원을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싶은 분들 계실 겁니다. 이렇게 니즈가 다르기 때문에 첨예하게 부딪히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도시재생에서, 특히 공동체 내에서 예술가는 낯선 것들입니다. 어쩌면 그분들한테 세균일 수도 있고요, 바이러스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예술가들은 만날 그림이나 그리고 사람들이나 만나고 술이나 먹는다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예술가들의 역할이 이렇게 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예술가들만의 문제는 아니고요. 도시재생을 구축하는 주체들이 변해야 된다고 보는데요. 우선 예술가들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술가들은 기존의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장소를 만드는 사람이어야 되고요. 이 장소를 만들면서 자신의 성향에 따라서 창작자가 될 수도 있고, 그리고 네트워커가 될 수도 있고 매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건 개인의 성향에 따라 분명히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만 어쨌든 예술가들, 그리고 건축가들, 조형가들은 장소를 만드는 플레이스메이커가 되어야 되고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동안 수동태로서의 향유자가 아니라 능동태로서 창작자, 창조자가 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좀 더, 프로젝트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한다면 관여하고, 저관여밖에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체험이나 향유를 통해서 자신의 의사들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퍼블릭 큐레이터라고 있는데요. 사실은 이걸 저 같은 사람들을 두고 얘기하려고 했는데, 사실 행정 쪽이 훨씬 더 맞다고 봅니다. 행정 쪽에서, 이것을 발주하는 쪽이 아니라 서로 간에 이해관계들을 조율해주는 큐레이터로서의 역할. 매개자로서의 역할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이런 것들을 이 세 가지의 재료들. 장소와 창의와 관심을 가지고 더불어 성장하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도시재생 내에서의 문화예술의 역할이 아닌가, 라고 말씀을 드려봅니다. 

예술가들은 삶과 장소에 어떤 이야기들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파장이라고 생각하고요. 삶과 장소가 그 파장들이 일어나는 만나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일으켜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으켜냄에 따라서 물론 젠트리파이어가 되기도 하고요, 운이 좋아 작품을 구매하게도 할 수 있습니다만. 다만 이런 활동들 내에서, 도시재생 내에서 예술가들의 역할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때문에 도시재생 내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역할. 그리고 장소와 사람들이 만나서 어떤 이야기들을 만드는 역할들을 예술가들한테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5. 창작_위트

반갑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는 와중에 화장실을 총 세 번 다녀왔는데, 까닭이 자꾸 물이 들어가는 거예요. ‘내가 왜 여기 지금 앉아있나.’ 이런 생각을 수없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서점이라는 가게를 하고 있는 시인인데요. 가게도 시인도 사실 공공예술하고 별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박성진이 태평공공예술창작소에서 뭔가를 한다고 할 때 정말 잘 어울리는 곳에 갔다고 생각을 했어요.  ‘태평하다’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 여기 와서 그 태평이 그 태평이 아닌 걸 알았고요. 한편으로 공공예술은 좀 태평한 어떤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창작자로서 제가 하는 얘기는 아니고요.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는 주민들 입장에서 공공예술을 봤을 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 정도 생각을 했습니다.

‘wit n cynical’ 시집서점 소개로 시작하겠습니다. wit와 cynical은 사실 n으로 묶일 수 없습니다. 명사하고 형용사가 묶인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래서 이걸 보고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저희 서점에 놀러 와서 저한테 지적을 하곤 합니다. “너 영어 못하지?” 영어 못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위트와 시니컬이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근데 왜 이런 이름이 지어졌냐면, 제가 A라는 시인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걔는 위트 있는 시인이니까.”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A가 저한테 “위트 인 더 시니컬이 뭐야?” 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랬더니 옆에 B가 박장대소를 하면서 “혀 짧은 애하고 사오정이 만났더니 위트 인 더 시니컬이라는 근사한 이름이 만들어지는구나. 너 서점내고 싶다며. 그러면 위트 인 더 시니컬로 해봐.” 라고 이야기를 해줬어요. 처음에는 ‘참 시답잖은 소리하고 앉았네.’ 생각을 하고 지나갔는데 그날 밤 자기 전에, 보통 많은 생각들을 자기 전에 하잖아요? 자기 전에 ‘아, 이거 근사한 이름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시에는 위트도 있고 시니컬도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A라고 얘기했는데 상대방이 B라고 이야기해도 충분히 어떤 의미를 발산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wit n cynical이라는 이름으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가 서점을 처음 열었을 때 이곳저곳 언론사에서 연락을 주었는데 그들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세상에 시집으로 서점을 낸다는 게 말이 돼?’ 그게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왜 하필 신촌이야? 근처 합정도 있고 홍대도 있는데.’였습니다. 어떤 가게가 장소를 그쪽으로 정할 때는 자신의 의지는 20이고요, 여건은 80이죠. 여건이 안 돼서 신촌, 홍대 있지만 그 여건이 안 되는 와중 저한테 주어진 자리가 신촌이라는 것은 약간 쾌재를 부를 만한 어떤 것이었습니다. 이게 공공성하고 좀 연관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사람들이 무언가 정서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더는 찾아가지 않는 곳’에 가게를 낸다면 일단 실익. 싼 임대료로 얻을 수 있을 거고, (물론 절대 싸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 공간이 어디쯤 있을 것인가는 대충 다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젊은 친구들이 가게를 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한 방편을 저는 제시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숍앤숍’이라는 개념입니다. 여기 가게에는 카페, 서점, 서점. 세 개의 가게가 입점이 되어 있습니다. 각자 시너지를 내면서 각자도생을 하고 있고요. 서로가 친절하게도 서로의 가게를 봐줍니다. 제가 지금 이 시간, 여기에 나와 있을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고요. 카페주인인 다른 서점주인도 기꺼이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 있습니다. 재미있죠? 가게를 냈는데 다른 생활전선을 가져도 되는 것도. 
그래도 1호점이 생각보다 잘 돼가지고요, 2호점을 냈습니다. 2호점 장소는 합정이었습니다. ‘내가 신촌에서 잘 돼 가지고 합정 왔다.’ 이런 마음으로 간판을 걸었는데요.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왜 합정은 잘 안 될까? 생각을 해보니까 합정이라는 동네가 망했습니다. 아까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제가 다니던 ‘문학과지성사’라는 출판사도 합정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합정 그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 계속 부동산값이 오르거든요. 혹자는 자기 건물이어서 그걸 팔고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고요. 혹자는 너무 세가 비싸져서 혹은 요란해서 다른 곳으로 사무실을 이전합니다. 그러면 유동인구의 핵심이 되는 직장인들이 이 자리에서 빠져나가고요. 그 자리에 가게들이 들어서고요. 그 가게들을 찾아오기 위한 허수들만 존재를 하게 되죠. 계속 임대료는 올라가고 가게 주인들은 어떻게든 이익을 내야 되니까 좀 더 저렴한 형태의 종목이나 혹은 제품을 제공하게 되고, 그러면 손님들은 하나둘씩 떠나게 되고 결국 남는 건 높은 임대료밖에 없습니다. 저희도 그 점을 미처 간파하지 못한 거죠. 저는 늘 뒤늦게 압니다. 

저는 예술에서 공공성을 생각해볼 때 떠오르는 게 연희문학창작촌이라고 해서 이 공공예술창작소랑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시인들이나 소설가들이나 평론가들, 혹은 그와 비슷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한테 레지던시를 제공하고요. 거기서 어떤 창작물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공간에서 이렇게 동네, 종로의 연희동 분들을 비롯해서 문학 팬들을 불러모아놓고 1시간 반 동안 고문을 합니다. 그리고 이거는 또다른 공공예술 사례로서, 얼마 전에 저희가 한 기획입니다. 시집이라는 행사였는데, 사람들한테 시집을 공짜로 나눠주는 행사를 했습니다. “왜 사람들한테 시집을 공짜로 나눠 주냐. 시집서점 주인으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어차피 버려질, 파쇄 될 책들이라며. 요즘 분들은 책을 상품으로 대하기 때문에 표지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있으면 그 책은 반품시키고요. 반품된 책은 몇 가지 심폐소생술을 거쳐서 재활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파쇄가 됩니다.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재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오은이라는 시인이 저런 생각을 했고요. 저는 반대를 했고, 시행을 했고, 나름 성공적으로 됐습니다. 컨테이너 박스를 저렇게 트럭에 싣고 가서 저렇게 펼쳐놓으면 하나의 시집이 된다. 이런 컨셉이었고요. 아이디어가 한 70% 구현된 형태입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됐는데 이것들의 공통점은 뭐냐 하면, 문학은 공공성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걸 증명할 행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친구가 한 거고 그다음에 제 주변 동료들이 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걸 기획한 분도 계신데 미안합니다.
뭐냐 하면, 이 기획들은 계속 어떤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라는 건 중요한 거고, 시라는 것은 우리 주변에 어떤 자양분이 될 수 있고 혹은 어떤 아이디어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공통적인 생각. 시가 뭔지 시인도 모르고 있는데 아무튼 모두 다 시는 필요하다고 믿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철저하게 텍스트와 개인의 아주 은밀한 소통관계이기 때문에 저렇게 벽에 타일로 붙여놓거나 일방적으로 누군가한테 들려주거나 혹은 책자를 나눠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문학의 공공성 말고, 모객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모객이라는 건 아까 말씀하셨던 내용인데요. 그러니까 공간이 장소가 되는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아까 파크 픽션 이야기했을 때 사람이 모여야 어떤 의미가 된다는 것. 그것은 예술이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받아들이는 자의 능동체라는 이야기에서 저는 격하게 공감을 했고요. 모객을 위해 되게 중요한, 저희 서점의 프로그램을 몇 개 소개하겠습니다. 
일단 첫 번째는 시인의 책상입니다. 별 거 아니고요. 아까 여러분이 보셨던 원고지 한 칸에 붙어있는 시들처럼 한 달에 한 번 시인을 선정하고, 그 시인의 시를 릴레이 필사합니다. 여기 찾아 오셔야지만 할 수 있는 거고, 이것의 특장점은 이 필사한 노트를 시인한테 보내준다는 겁니다. 이건 제가 시인이니까, 그리고 주변에 아는 시인들이 많다 보니까 할 수 있는 프로젝트죠. 저 테이블에 앉으면 시인의 시를 필사할 수도 있고 시인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행위들을 할 수 있습니다. 저 자리를 쾌적하게 꾸미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고, 저 자리를 쾌적하게 꾸미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중에 굿즈 상품화시켜서 판매하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저희는 베스트셀러도 시집이고 스테디셀러도 시집입니다. 이게 어떤 걸 이야기하는 거냐면, 여러분 교보문고 문 열고 딱 들어가시면 앞에 산처럼 쌓여있는 책들이 보이실 겁니다. 그거 매대라고 해서 서점에서 판매를 하거든요. 다 사고 싶어 해서 추첨을 해서 삽니다. 제일 좋은 자리는 1번을 뽑은 사람이 갖는다든가, 뭐 이런 식으로 추첨을 하는데 저희는 공평하게 모든 시집들이 다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 시집이거든요. 그날그날 컨셉에 따라서 시집들을 설정을 하고요. 여성의 날이면 여성 시집들만 쫙 깐다든가. 고양이의 날은 고양이 시집들을 쫙 깐다든가. 3월 20일은 참새의 날이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정말로 참새의 날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어떤 날들에 집착하게 됩니다. ‘오늘 무슨 날이지?’ 그래서 이것들을 사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데요.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걸 궁금하게끔 하고, 이걸 보고 싶게끔 해서 와서, 와서. 중요한 건 ‘와서’입니다. 저희가 온라인판매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와서, 오늘의 테마가 뭔지 그리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끔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건 저희 시그니처 독서클럽인데요. 두 시간 클럽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와서 두 시간 동안 시집을 읽고 가는 겁니다. 왜 두 시간이냐면 제가 시집 한 권을 읽은 시간을 재보니까 대충 두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오면 핸드폰을 뺏습니다. 각자 가져온 시집을 읽습니다. 그리고 갑니다. 이 생각을 하게 된 건 사람들이 요즘 책 읽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아, 책 읽을 시간 없으면 제가 만들어드릴게요. 두 시간만 저한테 내주십시오. 왔다 갔다 시간 포함해서 세 시간이면 충분히 합니다.” 세 시간이면 시집 한 권을 읽기 충분하니까요. 근데 이건 많이 하지는 못하고 가끔 하고 있고요. 처음엔 사람들이 많이 올지 몰랐습니다. 근데 신청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6명만 뽑아가지고 1인당 간식 하나씩 가져오라 그래서 간식 까먹고 두 시간 동안 시집 보고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편하게 주무시기도 했습니다. 시집이 엄청 졸려요. 저도 가끔 졸리거든요. 그다음에 기형도 28주기를 기념해가지고 행사한 거고요. 인원제한을 안 했어요. 그랬더니 너무 많이들 오셔가지고 컴플레인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덥다, 좁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게다가 핸드폰을 전부 압수했잖아요, 제가? 나중에 돌려주는데 애먹었습니다. 그래도 꽤 근사한 추억이었고요. 
그리고 저희의 제일 자랑은 낭독회입니다. 아까 낭독회가 독자를 고문했다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너네 낭독회는 도대체 뭐가 다른데?” 저희는 유료낭독회입니다. 돈을 받습니다. 2만 원이고요. 2만 원을 낸 만큼 저희는 노쇼(no-show)가 없습니다. 돈 안 돌려드립니다. 그리고 2만 원을 낸 만큼 정말 낭독회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거나 참여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오고요. 그다음에 2만 원 낭독회의 장점은 솔드아웃이라는 공지를 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솔드아웃이 나잖아요? 그러면 두 번째부터는 사람들이 급한 마음으로 참여합니다. 3분 만에 솔드아웃되는 경우도 있고 3초에 솔드아웃 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낭독회의 티켓공지가 나면 불안해하기 시작합니다. ‘혹시 안 되는 거 아니야?’ 시인들도 불안해합니다. ‘나 솔드아웃 안 되는 거 아니야?’ 이처럼 양측에 적당한 긴장감을 선사하고 저는 중간에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2만 원 티켓수익을 다 제가 갖는 건 아니고요. 1만 원은 카페에다 주고 1만 원은 제가 가져서 9천 원까지 도서티켓으로 피드백을 해드립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시집을 삽니다. 그래서 저는 명분을 획득해요. 

저의 최고의 목적은 모객입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가지고 있는 wit n cynical의 공공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시는 왜 읽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읽어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공통의 합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합의가 점점 흔들리고 있어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문학의 공공성에 대해 그다지 할 말이 없으므로 순문학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으로 넘어가보면요. 공감이라는 게 사람들이 예술에게 되게 바라는 지점인 거 같아요. 그리고 저는 이 공감이라는 잘못된 예가 지금 예술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공공예술도 이거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봐야 될 거 같은데. 그러니까 아까 얘기하셨잖아요. 공공성을 살리자니 예술성이 떨어지는 거 같고, 예술성을 살리자니 공공성이 떨어지는 거 같다. 근데 어떤 것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면 저는 예술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을 망치는 단어 중의 하나가 공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시를 아십니까? (일동 웃음) “다 쓴 치약”이라는 하상욱 시인의 시입니다. 여러분 지금 방금 공감을 하신 거예요. 공감하면 안 돼요. 이건 공감이라기보다 이 재치에 감탄하는 거거든요. 사람들이 이걸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공감을 했다고 이야기를 해버리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는 어떤 것을 쉽게 생각하는 걸 너무 좋아하고, 쉽게 생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를 비판하거나 시각예술을 비판할 때, 설치미술이나 추상화 같은 걸 비판할 때 “어려워”라고 얘기해요. 그러면 욕먹은 기분이에요. 어렴풋이. 왜냐하면 지금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시스템으로 돌아가고요. 어려운 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근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을 바꾼 건 어려운 겁니다. 쉬운 것 중에서 우리 삶을 바꾼 게 뭐가 있을까요? 아이폰이 쉽습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만유인력은 쉽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를 알고 계십니까? 김종삼 시인의 “묵화”라는 시입니다. 이 시도 어렵나요? 어렵지는 않죠. 그러면 이 시는 왜 어렵지 않은데 공감하기 어려워할까요, 보편대중들이?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걸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훈련을 받은 사람과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독자로 나눠지는데, 코어독자들은 이걸 계속 반복해서 훈련이 된 사람들이고 코어독자가 아닌 분들은 훈련을 안 한 사람이어서 난감할 수 있는데, 이것도 쉽고 앞에 것도 쉬운데 사람들은 앞에 것은 공감한다고 하고 뒤에 것은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저는 사람들이 예술을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태평공공예술창작소 가보시면, 옆에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비워놓고 거기다 그림을 그려놨더라고요. 재채기하는 사람, 이런 작품인데, 실제로 재채기를 해요. 음성을 플레이시켜가지고 누군가가 “에취!” 재채기를 해요. 저는 되게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재미있는 발상이냐면, 예술가들을 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만 보고 걸어가요. 근데 “에취!”라는 소리에서 딱 놀라게 되면 그 안에 있는 벽화를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발견하게 되면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어, 이거 뭐지? 여기 이 건물은 뭐야?’라는 생각부터 시작해가지고 ‘저 그림은 뭐야? 여기서 왜 재채기를 하나?’ 궁금해 하는 거죠. 그 그림이 피카소의, 사람들이 흔히 ‘내가 발로 그려도 그것보다 잘 그리겠네.’ 라고 그려지는 큐비즘으로 그려진다고 해도 저는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한번 들여다보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뭐가 다르냐고 하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보고 ‘어, 괜찮네?’ 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까지가 예술이 해야 할 일이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우리 흔히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되게 보기 좋은 것들을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근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어떤 것들도 아름다울 수 있잖아요? 그 과정을 밟고 가게끔 하는 게 공공예술이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을 해요. 아까 저희 서점 보여드렸지만 되게 힙하게 생겼어요, 요즘 친구들이 핸드폰을 바로 꺼내게 생겼다 말이죠. 근데 제 취향은 아니에요, 사실. 제 취향은 조금 더 빛이 들지 말아야 하고요. 마음에 곰팡이가 필만큼 습한 곳이어야 해요. 근데 저렇게 된 까닭은 이런 겁니다. 저는 문턱을 낮추고 싶었어요. 저희는 시집서점이라고 이야기하지, 시집전문서점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거든요? 남들은 다 전문서점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 말 되게 싫어해요. 시집전문서점이라고 하는 순간 문을 닫게 돼요, 마음의 문을. 저는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와서 ‘시 별 거 아니네.’ 하고, 시집 꼭 안 사가도 좋으니까 그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요. 강연도 하고 낭독회도 하는 까닭이 그런 거거든요? 공공예술도, 그렇잖아요? 문턱을 낮춰야지 퀄리티를 낮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꼭 태권브이가 그려져야지 이게 예술이 대중들한테 다가가느냐.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대중한테 다가가기만 할 거예요? 대중들이 다가갈 수 있는 어떤 방편을 만들어주는 게 저는 공공성의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시장님! 저는 그런 공공성을 확보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불편하게 하고, ‘이 저의는 뭔가?’라고 생각하게 하지만 한 번씩 사람을 멈추게끔 하는데, 그만큼의 공간하고 그만큼의 돈만 있으면 됩니다. 대충 연 예산 100억 정도만 있으면 될 거 같아요. 할 수 있어요. 관계자가 없으니까 막 던지는 거지만. 
우리의 현실은 되게 복잡한 미로고요. 예술은 미로를 빠져나갈 단서를 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 미로 빠져나가는 중간 중간에 즐거움은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어차피 고된 삶, 예술이 해야 할 일은 그 정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6. 짧은 대화

6-1. 빈
공공예술창작소가 좀 어떻게 갔으면 좋겠다? 내지는 작가들한테 좀 바라는 점? 

6-1. 심장
제가 태평공공예술창작소를 생각하면서 두 가지 측면에서 혼동이 있는 것이 뭐가 있냐면, 한편으로는 예술가들의 레지던시들을 제공하는 공간이 있잖아요? 그러면 창작에 대해서 집중하는 것이 타당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러면 공공에서 지은 거니까 당연히 공적 행위를 해야 된다는 측면에서도 당연하고. 근데 이게, 아까 그 공간을 둘러보면서 그런 생각이 좀 들었어요. 어떤 생각이냐면, 작가마다 자신들이 가진 성향들이라는 게 분명히 있는 거거든요? 어떤 작가는 공적으로 나갈 수 있는 작가가 있고, 어떤 작가는 공적으로 나가지 못하는 작가들이 있어요. 다만 그래서,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본인의 성향을 확실히 알고, 그 확실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활동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공적으로 나가서 커뮤니티 프로그램들이나 공공미술을 할 수도 있고요. 어떤 작가는 그러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근데 그런 작가들도 그거 하나만 좀 부탁드리고 싶어요. 어떤 거냐면, ‘최소한 내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그리고 그게 설사 내 작업을 하더라도 그분들이 왔을 때 이야기를 트고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정도만 요청하고 싶어요. 무리하지 마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6-1. 케이
제 스스로가 제가 작가인지 기획자인지 고민이 많은 지점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서 왜, 아까 작가들의 역할이라는 얘기를 하셨잖아요? 저는 모든 작가가 공공예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성향에 따라서 나의 것에 좀 더 맞는 사람이 있고,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부분에서 커뮤니티 지향적인 사람도 있는데, 그때 제가 주로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근래 오면서 좀 정리가 됐던 게 예술가의 역할이 변해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 책들이나 조언들에서 도움을 좀 받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공공예술을 선택하지 않고 기본의 기본인 창작인 것을 하는 것에 대해서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공공예술창작소라는 이 장소는, 되게 굉장히 애매한 지점이 다 합쳐져 있어요. 좀 더 클리어한 기준들이 있었으면 작가들도 나의 성향에 맞게, 판단하고 계획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은 했어요. 작가로서는 나의 성향에 맞게, 내가 나만의 작업이 아닌 커뮤니티 베이스 작업을 함에 있어서 무리가 없는, 앞에서도 말씀하신 무리가 없는 선에서 하셨으면 좋겠고. 그리고 내가 이쪽에 작업을 한다면 기존의 작가가 가져야 될 역할하고는 조금 다른 역할들을 생각해보셨으면 해요. 그렇잖아요, 그전에 작가들은 약간 내가 작업의 주체가 돼야 된다는 게 강한데, 그렇지 않고 내가 어떤 조언자, 어떤 보조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역할을 좀 확대해서 생각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6-1. 위트
저는요. 공공예술은 기획자가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작가들은 예술을 하시고 그다음에 좋은 기획자. 저는 좋은 예술가만큼 좋은 기획자들이 좀 나와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아까 말씀하셨던 거 다 종합해서 좋은 기획자가 공공예술창작소에 있다면 그 사람이 기획을 잘하고 예술가가 그 힘을 빌려주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나오면, 그러면 이도 저도 아닌 건 안 나올 거 같아요. 그 과정을 배우는 거고, 또. 예술가도 배우려고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서로 배워가는 과정이 저는, 그래서 기획자가 만약에 있다면 그 기획자랑 열심히 소통하는 게 제일 좋고요. 기획자가 없다면 태평공공예술창작소는 기획자를 먼저 들여야 될 거 같아요. 

6-1. 에코
‘공공예술소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는 사실 저도 퀘스천마크예요.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요. 정말 쉽지 않은 공간 안에 들어와 계신 게 맞아요. 그래서 지역을 먼저 좀 이해를 하셨으면 좋겠고. ‘왜 우리가 하려고 하는 걸 이해 못하지?’ 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가 하고 있는 걸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보여줄 수 있을까?’를 좀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무언가를 보여줘도 그것이 뭔지 몰라요. 그랬을 때 설명이 필요한 거죠. 아니면 그것들을 볼 수 있게끔 하는 어떤, 해석이 필요해요. 지금 공공예술소 지하에 보면 이렇게, 작품으로 빛을 모아가지고 넣는 그런 것들이 있어요. 제가 봐서는 그 지역주민들에게 ‘우리가 이런 걸 했어요.’ 하고 초대를 해서 그냥 이렇게 보여주면 ‘저거 뭐지?’ 그러실 거예요. 근데 작가님이 그걸 설명을 해요. 우리 이 지역은 지하가 있는 건물들이 되게 많다. 햇빛을 이용해가지고 어떻게 하면 이 지하로 이걸 담아서 전달할 수 있다. 환경적인 용어로는 이걸 투광조명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 조명을 어떻게 지하로 넣을 것인가?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게 작가님의 공공예술인데요. 굉장히 신선하더라고요. 저도 생각을 못했던 영역이었는데. ‘저게 예술이 맞아?’ 저거는 어떻게 보면, 환경에서는 그런 것들을 적정기술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저건 적정기술의 영역인데? 예술로 저거를 이렇게 표현하셨네?’ 뭐 이런 생각들이 들면서 이런 생활과 예술이 계속 접목을 하면서 그분들의 삶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좀 이렇게 계속 고민해주셨으면 좋겠고요. 그것이 실현되지 않아도 좋아요. 그렇지만 공공예술소에서는 적어도 그런 시도들이 계속 끊임없이 되어야 되는 것은 분명한 거 같아요.

6-2. 순
사실 여기 살다보면 현실적으로 예술보다는 주차문제가 가장 피곤하게 다가오거든요. 그래서 주차장이 조금 더 멀리 떨어져있더라도 어딘가 확보만 돼있다면 심리적으로 안정도 있고 마을공간에서 살아가는 데는 동선상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정도는 이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인데, 중요한 건 주차문제가 가장 힘들다보니까... 그래서 공공미술이 스며들 수 있는 공간도 굉장히 협소해요.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있지만 어쨌든 그걸 실제로 실현하기에는 마을공간하고 맞아떨어져야 되는 문제가 있는데 상징적으로, 예를 들어서 나무 한 그루를 주차장하고 맞바꿀 수 있는 어떤 그 뭐랄까, 작가로서의 어떤 교량역할? 매개자 역할? 그것도 매우 고민스럽고요. 요셉 보이스가 이 동네에 왔으면 아마 그런 프로젝트를, 카셀에서 했던 프로젝트를 도저히 실현할 수 없었을 거 같은데. 환경에서는 주차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또 혹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신지. 저는 그게 가장 현실적으로 궁금하더라고요. 

6-2 에코
이건 민선 7기 환경정책 공약 제안서에 들어있는 그런 내용들을 막 까야 될 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듭니다. (웃음) 일단은 본시가지 안의 이 주차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가 그냥 기존의 생각대로 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공간은 이미 정해져있고 콘크리트 건물들이 이미 자리를 다 잡았어요. 그러면 우리가 이제 추가적으로 어떠한 공간을 상상한다고 하면 지하일 겁니다. 예를 들어서 1공단 자리에 무언가가 들어온다면. 저희는 거기를 공원으로 해주기를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예전에는 그냥 공원으로 쓰자고 얘기를 했던 거고요. 지금은 “위는 공원으로 쓰고 지하는 주차장으로 넣자. 그래서 주변에 있는 차들을 좀 그쪽으로 흡수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자.” 그런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주차의 문제는 본시가지 안에서 차량 자체의 수를 줄이지 않는 이상은 솔직히 말하면 답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 같은 경우도요, 사대문 안으로 자동차가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그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 이것들을 제한하지 않고 그냥 뒀다면 사대문 안의 혼잡이 매우 심각할 겁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잘, 수요조절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되고요. 본시가지 안에 계속 이렇게 20평짜리의 작은 집들이 나올 때마다, 저희의 입장은 그렇습니다. 성남시는 그럴 돈이 있습니다. 분당하고 판교에서 엄청나게 세금 거둬들이고 있고요.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습니다. 판교가 들어오면서 그렇게 세수가 늘었는데 그렇게 못하면 그게 바보입니다. 그렇다면 본시가지에 이렇게 나오는 건물들을 시가 계속 사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사고,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거기를 자동차 2대, 3대 들어가는 주차장을 만들어줄 것이 아니라 그곳을 비워놓는 한이 있어도 그 공간들을, 주민들을 위해서 숨통을 틀 수 있는 공간으로 열어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그곳에 나무를 심으면 아주 좋겠지만 사실 그렇게 나무를 심는 게 아주 적절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나무가 없어서, 정말 초록을 볼 수가 없어서 그거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여기에 와있는 이유가 뭐냐 하면, 환경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제안할 수 있는 게 사실 굉장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의도가 예술과 만나면 훨씬 더 다양하게, 훨씬 더 시민들한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어요. 저희가 생각하는 게, 오직 자연을 살리는 것만이 우리의 환경이 아니라 우리 주변, 환경이라는 단어가 그렇거든요. 나를 중심으로 해서 내 주변에 있는 것이 모두 환경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여러분도 제 환경입니다. 여러분이 웃고 있을 때와 여러분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을 때 내 삶의 질이 달라지는 거죠. 그런 것들을 볼 때 어떻게 하면 본시가지는 지금, 그러니까 공간을 주민들에게 확보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되고 그 공간이 어떻게 좀 더 잘, 이것들이 활용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그것이 도시재생과 만났으면 좋겠고요. 반드시 나무만은 아닙니다. 저는 물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은 여러분이 아는 기후변화와 굉장히 많이 붙어있어요. 물을 확보하는 공간들을 도시 안에 넣어주지 않으면, 요즘에 계속 더워지고 있죠? 그러면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도시재생을 하면서 우리는 하천 하나라도 제대로 좀 살려보자. 그리고 그 하천을 통해서 이제 사람들의 삶의 질과 그리고 도시 안에서 지금 이렇게 이 빠지듯이 이렇게 빠지는 공간들에 좀, 공간에 여백의 미를 줌으로 인해 주민들이 좀 더 삶의 질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가자. 다만 그 방법이 제가 얘기하는 나무를 심어서, 꼭 나무를 심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무를 그릴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어쩌면 우리는 나무를 공중에 띄울 수도 있습니다. 그 능력, 그니까 인간의 능력은 너무나 크니까요. 근데 그런 방법들을 같이 했으면 좋겠고, 같이 가는 그 선두에 예술가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시민들하고 정말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도구를 가지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7. 끝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내가 공공예술창작소에 와서 고민이 많은데 친구들이 모여서 좀 같이 고민을 나눴으면 좋겠다.’였어요. ‘아, 이거다!’를 찾고자 한 것은 아니었고, 다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 아니야, 나는 저렇게 생각해.’ 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어요. 그 말을 다 듣고서 ‘잘 들었고 결정은 내가 할게.’ 할 수도 있고, 혹은 ‘어머 네 말이 내 마음에 쏙 드는구나.’하고 그쪽으로 갈 수도 있는데, 어떻게 나아갈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다 같이 태평동으로 가서 뭔가를 먹도록 해요! 

본 글은 2018년 3월 23일, 성남시 수정구 보건소 회의실에서 진행된 <공공예술을 생각하다_장소, 공공성, 그리고 예술>세미나(기획: 박성진)의 내용을 기획자의 눈으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본 글의 목적은 발표자의 의견을 정확하게 옮기는 것이 아니라 기획자를 통한 전달을 보여주고자 하는 데에 있으며, 본문의 내용이 가진 오류나 이견은 발표자가 아닌 기획자에게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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