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나의 태평한 생각  01

본 작업은 2018.01~2018.12의 기간 동안,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일대에서 생각하고 기록한 순간들을 담은 것입니다. 실제의 사건, 장소, 인물을 기반으로 하여 작가의 해석을 거친 팩션(faction)입니다. 

골목의 폭은 4미터가 조금 넘습니다. 
“일방통행이야?”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동생의 목소리에는 아직 졸음이 묻어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봅니다. 골목 어디에도 일방통행이라는 표지판은 없습니다. 
“주차는 어떻게 해?”
골목에다 하면 돼지. 내 눈 앞에는 서준이네 옷, 이라고 적힌 유리창에 바싹 붙여 세운 까만 그랜저가 보입니다. 서준이네 옷집은 간판만 남은 빈 가게라서 누구든지 그 앞에 먼저 차를 세우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4미터짜리 골목인데 일방도 아닌 쌍방통행에 주차까지 한다고?”
못 믿겠으면 영상통화를 하든가. 나는 더 이상 설명하기 귀찮아집니다. 그래, 그러니까 이불 좀 갖다 줘. 차에 전부 다 실어놓았으니 운전만 해달란 말이야. 

나는 서른 해 동안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았습니다. 주공아파트에서 우성아파트를 거쳐 래미안아파트로 옮겨갔습니다. 아파트의 이름은 달라져도 수직과 수평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아파트의 본질은 변함이 없습니다. 건물만이 아니라 아파트를 둘러싼 환경도 그렇습니다. 아파트의 주차장은 도로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단지 앞 도로는 노란 선과 흰 선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태평동 골목길은 하나의 도로에서 주차도 하고 상행으로도 가고 하행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분명하지 않은 길은 나 같은 초보운전자에게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동생을 불렀습니다. 서울에서 수원에 있는 연구소로 출근하는 동생은 나보다 운전을 더 일찍, 더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동생도 이런 길은 익숙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두 번 다시 부르지 마.”
양쪽 사이드미러를 접고 슬금슬금 골목길을 올라온 동생은 땀을 닦는 시늉을 합니다. 서준이네 옷집 앞에는 여전히 까만 그랜저가 지키고 있고, 그 옆의 엄지쌀집과 생선젓갈과일야채 가게도 마찬가지로 차가 세워져 있습니다. 다행히 서준이네 옷집 옆 주택의 현관이 비어 있어서 동생은 차를 세웠습니다. 주택 앞에는 ‘5시에 차 들어옵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지금은 3시니까 주차를 해도 된다는 것이겠지요. 집주인은 토요일인 오늘도 출근을 했는가봅니다.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입니다. 나는 동생의 차에서 그릇과 냄비가 든 봉투를 꺼냈습니다. 동생은 이불을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옵니다. 나는 창작소라는 간판을 단 2층집의 현관에 보안카드를 터치합니다. 기계음성이 경비가 해제되었음을 알려줍니다. 현관문을 열자 계단이 보입니다. 1층과 2층은 서로 분리된 구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1층을 거치지 않고 외부계단으로 올라가서 2층 입구에 도착합니다. 다시 한번 보안카드를 터치합니다. 전자경비시스템은 현관에 하나, 1층 입구에 하나, 2층입구에 하나 설치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문을 열고 닫는 자물쇠 기능만이 아니라 경비 기능을 실행하는 시스템입니다. 2층에 있는 총 다섯 개의 창문에 센서가 설치되어 있어서 조금이라도 덜 닫힌 창문이 있으면 문이 아예 잠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파트보다 한층 더 강화된 보안장치입니다. 나는 이 집의 전자경비시스템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신 동생은 2층을 휘이 둘러봅니다. 1층보다 조금 더 작은 2층 내부는 화장실 하나, 방 두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관 양쪽으로는 냉장고와 정수기가 있고 냉장고 옆에는 1인용 티테이블이 놓여 있는 풍경입니다. 실은 현관 앞에 냉장고를 세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티테이블이 아니라 식탁을 놓고 싶었죠. 하지만 그러기에는 공간이 너무 작았습니다. 부엌도 아니고 거실도 아닌, 하지만 동시에 부엌과 거실로 사용해야만 하는 공간인 것입니다. 좁기는 해도 인테리어를 갓 마쳐서 벽도 희고 바닥도 하얗습니다. 내부만 보면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라서 좋습니다. 아파트는 새것일수록 좋으니까요. 여기에는 동생도 동의합니다. 동생이 옮겨준 이불을 넣기 위해 내 방문을 열려고 하는데, 맙소사. 방문이 잠겼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죠. 나는 길쭉한 손잡이를 온힘을 다해 올렸다 내렸다 해보지만 손잡이는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방안에 있을 때 샤프뚜껑처럼 자그마한 똑딱이 단추를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래도 그 똑딱이 단추를 누른 채로 방문을 닫고 나온 것 같습니다. 손잡이를 붙잡고 애쓰는 나를 동생이 밀칩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손잡이 아래의 작은 구멍을 푹 찌릅니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립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손잡이를 몇 번 더 돌려보던 동생이 혀를 찹니다. 
“이런 건 쓰레기야.”
동생은 젓가락 하나로 문이 열린 내 방을 감상합니다. 화장실보다 조금 더 큰 방에는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 책장 하나, 그리고 캐비닛 하나가 들어차 있습니다. 물론 책상도 의자도 책장도 캐비닛도 다 하얗습니다. 동생이 수험생이던 시절에 잠시 머물렀던 고시원을 떠올리게 하는 방입니다. 하지만 책상 앞으로는 그보다 더 큰 창문이 뚫려있어서 고시원처럼 답답하지는 않습니다. 창밖으로는 옆집의 옥상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창문을 열고 몸을 내밀면 옆집의 옥상으로 건너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빨랫줄에 매달린 양말의 무늬까지 보입니다. 이렇게까지 옆집에 대해 알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블라인드를 쳐서 시야를 가립니다. 당연히 블라인드도 하얗습니다. 
책상 아래 바닥에 요가매트를 깔았습니다. 그 위에 동생이 가져다준 이불을 깔고 누워봅니다. 누운 채로 기지개를 켤 수는 없지만 잠을 자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사를 마쳤으니 이제 집으로 가야겠습니다. 수고비를 달라고 하는 동생에게 집들이 선물로 퉁치자고 윽박질렀습니다. 집들이면 대접을 했어야지! 하고 동생이 분해합니다. 나는 다음 주 목요일 오후 세 시가 창작소 개소식이니 그때 오라고 초대합니다. 동생은 한심한 눈빛으로 나를 봅니다. 
“그 시간에 누가 와.”
나도 그게 걱정입니다. 

평일 오후 세 시에 집들이, 아니 개소식을 하기로 정한 것은 내가 아닙니다. 창작소를 관리하는 재단에서 정한 날짜와 시간입니다. 재단에서는 태평동 골목길 안의 2층집을 구매해서 간판도 부착하고 모델하우스처럼 하얗게 꾸몄습니다. 냉장고와 티테이블과 책상, 의자와 캐비닛도 전부 재단이 들여놓은 것입니다. 보안카드로 작동하는 전자경비시스템도 재단이 설치했습니다. 그러니 창작소의 집들이인 개소식 날짜를 재단이 정하는 것을 불평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연락처 목록을 훑으며 평일 오후 세 시에 와줄 수 있을 법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가족들은 회사를 다니거나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게다가 동생이 이불을 가져다준 것을 다들 알고 있어서 더 이상의 가족찬스는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친구들을 초대해야 하는데, 한 시까지 태평동으로 올 수 있을법한 사람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회사원에게는 아무래도 무리일 테니 결국 작가들 중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소설가 친구는 울산에서 강의가 있고 시인 친구는 신촌에서 서점을 지켜야 합니다. 기획자 친구는 그 시간에 연희동의 카페에서 한창 바쁠 것입니다. 결국 골목 안 사람들, 엄지쌀집이나 생선젓갈과일야채 가게 정도에서나 슬쩍 들여다보겠지요. 그렇게 안면을 트고서 앞으로 수시로 드나들면 부담스러울 텐데, 그렇다고 내가 부를 손님도 없으니 어떻게 하죠. 그런 고민에 빠져있는데 누가 방문을 두드립니다. 
“못 박아드릴까요?”  
2층에 있는 두 개의 방 중 나머지 한 방에 입주한 현이 묻습니다. 현 덕분에 벽에 달력을 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의 친구들은 개소식에 몇 명이나 오는지 궁금합니다.
“한 명?” 
현은 평일 낮에 누가 와요, 하고 되묻습니다. 게다가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목요일은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게요, 하고 맞장구를 치면서도 나는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같은 층에 입주하기는 했지만 나는 현을 잘 모릅니다. ‘한 명(마침표)’가 아니라 ‘한 명(물음표)’라는 것이 신경쓰입니다. 그래서 나도 현에게 ‘아마도 두 명?’하고 물음표로 대답합니다. 분당에 사는 재이와 용인에 사는 케이는 둘다 공공예술에 관심이 있는 작가들이니 꼭 올 것이라고 믿지만, 글쎄요. 역시 물음표로 대답하기를 잘했습니다. 

수요일 오후, 나와 현은 내일의 손님들을 대비하여 2층을 깨끗하게 치웠습니다. 싱크대 위 물받이통에 올려둔 컵과 접시는 전부 찬장 안쪽으로 넣었고, 생수통도 보이지 않도록 싱크대 아래 빈 공간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 방을 치웠습니다. 책은 전부 책장에 꽂고 이부자리는 잘 개어서 캐비닛에 넣었습니다. 필기도구는 모조리 필통에 집어넣었고 노트북은 책상 한  켠에 밀어두었습니다. 작지만 정갈하고 효율적인 작업실처럼 보였습니다. 
“이러고 갈 거예요?”
담당자는 내 방을 둘러보며 이건 너무, 좀, 하고 우물거립니다. 돌려 말하기에 익숙한 그의 화법은 알아듣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담당자는, 내 방이 너무 고시원처럼 보이는 것을 우려합니다. 나는 고시원만한 공간에서 거주하려면 고시원같은 배치가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물도 좀 펼쳐놓고...”
노트북은 책상 위에 있고 내 이름으로 발간된 책은 책장에 꽂아 두었습니다. 그렇게 설명해도 담당자의 표정에서 걱정이 사라지지 않아서, 나는 담당자를 위로합니다. 현이나 유, 빈 같은 다른 입주자들이 작품을 벽에 걸거나 세워둔 것은 그들의 작품이 책장에 꽂을 수 없는 형태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른 세 명의 방이 있으니 하나쯤은 고시원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럼 저것만이라도 치워주세요.”
담당자는 내일 하루만이라도 요가매트를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나는 내 작은 방에서 잠자리와 운동, 그러니까 밤과 낮 모두를 책임지는 것이 바로 이 요가매트이며 이것이 내 방의 정체성을 이룬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습니다. 개소식은 내일이고 담당자는 이미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매트를 둘둘 말아서 캐비닛에 집어넣습니다. 문득 나는 내일 오는 손님들이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해집니다. 내가 초대한 손님은 두 명의 작가뿐입니다. 다른 손님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태평동 골목 속 2층집,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서 오는 것일까요. 

개소식은 오후 세 시이지만 담당자와 입주자들은 창작소에 미리 모여 대기하고 있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 시 반쯤 태평동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일기예보는 우연히도 맞아떨어져서 지독하게도 추웠고, 나는 절로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골목길 안쪽으로 창작소가 보일 무렵, 나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니까 저것은 레드카펫이다. 

주황색으로 칠한 2층집, 창작소 문 앞에 레드카펫이 깔려 있었습니다. 폭이 4미터가 조금 넘는 좁은 골목길이었기 때문일까요, 레드카펫은 골목길을 온통 장악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실제로는 골목의 절반도 덮지 못했지만, 레드카펫을 밟지 않고서는 창작소로 들어가지 못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나는 부끄러움인지 당황스러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고, 그래서 일단은 창작소를 지나쳤습니다. 엄지쌀집보다 좀 더 위로 올라가서 모퉁이에 서서 주위를 살폈습니다. 저 아래로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 한 명이 지팡이에 의지하여 골목을 올라오고 있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보는 척하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매우 느렸고, 창작소 앞에 서서는 물끄러미 레드카펫을 쳐다보기까지 합니다. 나는 더더욱 휴대폰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만약에 저 할아버지가 나에게 이게 뭐냐고 묻는다면 모른다고 해야지, 무조건 모르겠다고 해야지. 사실 이건 속으로 다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레드카펫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뭐하자는 건지는 나 역시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다만 나는 창작소와 상관없는 사람인 척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레드카펫을 골목길에 깐, 저 2층집 사람 중 한 명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추워서 몸이 떨렸지만 할아버지가 창작소를 완전히 지나치기를 기다렸습니다. 레드카펫을 밟고 창작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영하 10도의 날씨 때문인지 골목길은 한산했고 할아버지 뒤로는 인적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 나는 재빨리, 레드카펫을 밟고 창작소로 들어갔습니다. 

저기, 뭐야, 밖에, 저거, 봤어요? 나는 혼자서 떠들어야 했습니다. 모두가 바빴습니다. 다과 준비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핫팩은 부족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완전해보였던 창작소는 여러 사람이 드나들면서 어지럽혀졌습니다. 계속해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담당자를 붙잡고 레드카펫을 왜 깔았냐고 타박하거나 치워달라고 부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입주자들에게 레드카펫 봤냐고, 저게 대체 뭐냐고 토로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들 어제 칠했던 것이 아직 덜 말랐거나 어제는 작동되던 것이 오늘은 멈추었거나 어제는 튼튼했는데 오늘은 헐거워졌거나 하는 이유들로 분주했습니다. 개소식은 내 생각보다 더 큰 집들이였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나는 두 시에야 창작소로 들어온 것이 조금 미안해졌습니다. 한 시, 아니 열두 시까지 올 걸 그랬습니다. 뭐 좀 도와줄까요, 하고 담당자에게 물었습니다. 담당자는 통화를 겨우 멈추었습니다.
“그냥 2층에 가 계세요.”
알겠어요, 하고 1층 현관으로 다가갔습니다. 현관 옆, 화장실 사이에 커다란 쇼핑백이 놓여있어서 눈길이 갔습니다. 그 안에는 싱싱한 카네이션이 들어있었습니다. 나는 쇼핑백을 좀 더 살폈습니다. 카네이션의 정체는 부토니에였습니다. 연한 분홍빛의 탐스러운 카네이션 주위를 초록색 유칼립투스와 로즈마리로 감싸고, 줄기 부분은 테이프로 마무리하고 끝부분에는 커다란 옷핀을 매달아놓았습니다. 쇼핑백은 카네이션 부토니에로 가득했습니다. 나는 부토니에를 하나 집어 들고 향기를 맡아보았습니다. 풋풋하고 달고 향긋했습니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날씨에 이렇게 싱그러운 꽃다발이라니. 오늘이 혹시 어버이날인가요. 나는 실없는 소리를 하며 부토니에를 내려놓았습니다. 농담을 하지 않으면 넘기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다과와 핫팩과 부토니에 등으로 북적거리던 1층과 달리 2층에는 현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머물렀습니다. 나는 내가 초대한 두 명의 손님, 케이와 재이 작가가 언제 올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되도록이면 세 시가 되기 전, 가능하면 지금 당장 나와 함께 있었으면 했습니다. 레드카펫 봤어? 부토니에 준비한 거 있지? 어떻게 생각해?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둘 다 세 시 전에는 도착하기 힘들다고 답했습니다. 사실 늦지나 않으면 다행이지요. 그리고 세 시가 되기 전에 이미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들어온 것은 짙은색 패딩점퍼를 입은 재단 직원들이었습니다. 패딩에는 재단의 로고가 박혀있어서 재단 직원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쉬웠습니다. 싸스락싸스락싸스락. 겉감이 비닐로 처리된 패딩이 스치는 소리가 2층을 메웠습니다. 직원들은 현의 방을 보고, 내 방을 보고,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내려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나는 내 방 안에 앉은 채로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직원들은 일렬로 줄을 서서 이동했습니다. 공간이 좁기 때문에 줄을 서서 질서 있게 관람하는 것이 효율적이었습니다. 나는 우리 속의 사막여우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막여우는 좋은 동물이니까 이것은 긍정적인 비유입니다. 안면이 있는 직원이 허니버터칩 한 상자를 주었습니다. 나는 허니버터칩을 캐비닛 속에 숨겼습니다. 먹이를 비밀장소에 숨겨놓는 사막여우처럼 말입니다.  
재단 직원들 다음으로 온 손님들은 짙은색 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 저렇게 얇은 코트라니, 추위에 대단히 강하거나 차를 타고 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재빠르게 관람하고 사라진 직원들과 달리 코트를 입은 손님들은 공연히 서성거렸습니다. 집이 너무 좁다, 방이 너무 작다,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다 들렸습니다. 그들은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나에게 인사를 되돌려주는 대신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뭐 필요한 거 없어요?”
수도자가 아닌 이상, 필요한 게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대뜸 나의 욕망을 말하기는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나는 코트를 입은 사람을 아래위로 훑어보았습니다. 재단 로고가 박힌 패딩이 얼마나 유용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코트들의 정체가 도무지 짐작이 가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내가 이름을 잊어버린 걸지도 모르니 차마 당신이 누구냐고는 묻지 못하겠습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세요.”
말하면 주실 수는 있나요? 그렇게 되묻자 코트를 입은 사람이 자기 명함을 건네줍니다. 명함에는 낯선 이름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괜히 아는 척 안 하기를 잘했습니다. 시의원, 도의원이라고 적힌 명함도 받았습니다. 다 처음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몇 번이고 필요한 것을 말하라고 재촉해서 나는 간절히 바라던 것을 말합니다. 세탁기요. 코트를 입은 남자에게 말하고 여자에게도 말했습니다. 이 집에는 세탁기가 필요해요. 
“다른 건 필요하지 않고요?”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먹고 자고 씻고 빨래할 수 있는 집이라면 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옆집처럼, 나도 옥상에다 빨래를 널고 나의 작은 방에 들어와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생각에 잠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세탁기요, 세탁기. 나는 몇 번이고 탐욕스럽게 세탁기를 반복합니다.   

재단 직원들에 이어 의원들까지 2층을 관람하고 나갔지만 내 손님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세 시가 지났는데도 안 오고 뭐해, 하고 전화하니 케이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합니다. 또 지각이네 또 지각이야. 내가 비난하자 케이는 억울해합니다. 늦지 않으려고 용인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다 왔는데 갑자기 길이 너무 막혀! 난리도 아니야!”
평일 낮에 태평동 거리가 왜 막히냐고, 나는 케이를 의심합니다. 교통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어디서 공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출퇴근 시간도 아니니까요. 나의 논리적인 비판에 케이는 이유를 대지 못합니다. 하지만 잠시 후에 이유를 알게 된 케이는 득달같이 내게 전화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골목길 못 들어가게 막았잖아!”
이 사실을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고 나를 탓합니다. 하지만 내가 도착했던 한 시 삼십 분까지는 골목길 통제에 대한 아무런 조짐이 없었습니다. 택시기사는 케이에게 골목길을 들어가지 못하니 내려서 걸어들어가라고 권했습니다. 케이는 오늘처럼 추운 날 이게 무슨 일이냐고 짜증을 냅니다. 나는 적당한 운동은 건강에 좋다고 케이를 달랩니다. 하필이면 케이가 태평동을 방문하는 오늘, 느닷없이 골목길 차량 통제를 하다니 이 무슨 불운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통화하며 2층 계단으로 나가는데, 어머나 이런. 골목길에 인파가 가득합니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내 눈에는 검은 머리와 검은 코트와 검은 패딩점퍼로 이루어진 검은 물결이 골목길을 채운 것 같습니다. 개소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요. 케이와 전화를 끊고 사진을 찍습니다. 저 아래에서부터 각이 진 검은 차 한 대가 올라옵니다. 그새 골목길 통제가 끝난 걸까요? 검은 차는 창작소 옆 빈집 앞에서 정지했습니다. 차문이 열리고 밝은 색 패딩점퍼를 입은 사람이 내립니다. 도열해서 선 재단 직원들이 한꺼번에 인사합니다. 패딩을 입은 사람은 창작소를 향해 사뿐사뿐 걸어옵니다. 그는 레드카펫을 자연스럽게 밟습니다. 나는 저 사람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손가락을 움직여 문자를 찍습니다. 케이야, 빨리 오면 시장도 볼 수 있어. 킬킬거리며 문자를 전송하고 골목 저쪽을 내려다봅니다. 케이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요.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는데, 서준이네 옷집 앞에 서있는 담당자가 내 눈에 들어옵니다. 담당자는 나를 향해 양팔을 휘젓습니다. 몸짓으로 말하기에는 우리는 서로를 잘 모릅니다. 전화로 얘기하세요, 하는 의미로 나는 휴대폰을 들어 보입니다. 이내 내 휴대폰이 진동합니다. 담당자가 소리칩니다.
“빨리 내려와요!”   

현관문을 열자 패딩점퍼를 입은 시장이 문 앞에 서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시장이 손을 내밀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악수를 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하고도 말했습니다. 아무튼 시장도 이 집을 구경하러 온 것일 테니까요.
“사진부터 찍고 가실게요!”
누군가가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아까 나에게 필요한 것을 말하라고 했던 검정 코트를 입은 사람들은 이미 문 앞에 일렬로 서 있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시장의 오른쪽에 섰습니다. 왼쪽에는 어느새 현이 서 있습니다. 재단 직원이 흰색 장갑을 나누어줍니다. 장갑을 선뜻 끼지 못하고 만지고만 있는 나에게 시장이 알려줍니다. 
“한 쪽만 끼면 돼요.”  
시장을 따라서 나도 오른손에 장갑을 낍니다. 이제는 가위가 한 사람에 하나씩 돌아옵니다. 가위를 오른손에 쥐고 왼손으로는 리본을 듭니다. 사진사가 구령을 외칩니다. 하나, 둘, 셋! 싹둑. 리본이 잘립니다. 재단 직원이 장갑과 리본을 회수해간 뒤로도 사진사는 계속 사진을 찍습니다. 시장과 의원과 이사 같은 높은 사람들끼리도 찍고, 재단 직원들까지 모여서 찍고, 재단 직원들끼리만도 찍습니다. 나와 현과 유, 빈은 집의 일부처럼 가만히 서 있고 우리 주위의 사람들만 계속해서 바뀝니다. 나는 겉옷을 2층에 두고 나와서 이가 딱딱 부딪칩니다. 하지만 사진사 뒤편으로 서있는 케이와 재이를 향해 계속 미소를 지었습니다. 

시장이 집으로 들어가자 직원들과 의원들도 우르르 다시 뒤따라 들어갑니다. 그들이 1층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며 나는 재빨리 2층으로 피신합니다. 겉옷을 걸치고 의자에 몸을 묻습니다. 잠시 후 발소리가 다가옵니다. 시장을 포함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올라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하고 나는 다시 인사합니다. 시장은 내 방을 흘긋 보더니 창밖 풍경이 좋다고 칭찬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시장을 따라 들어온 사람들도 모두 동의합니다. 나는 오늘따라 옆집 옥상의 빨랫줄이 비어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날이 너무 추워서 빨래가 얼까봐 널지 않은 것일테지요. 시장은 말없이 뒷짐을 지고 서서 창밖을 봅니다. 침묵이 예상보다 길어집니다. 캐비닛에 넣어둔 허니버터칩이라도 대접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초대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손님이니까요. 하지만 내가 캐비닛을 열기 전에 시장의 휴대폰이 우렁차게 울립니다. 시장은 싱크대 앞에 서서 통화를 합니다. 나는 방문을 반쯤 닫고 휴대폰을 꺼내어 케이에게 전화를 겁니다. 추운데 밖에서 뭐하냐고, 어서 들어오라고요. 재이가 쌀집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니 조금 있다가 올라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담당자한테 핫팩이라도 달라고 해.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케이는 웃으면서 됐다고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시장은 아직 통화중입니다.     

오후 네 시 반, 이제 레드카펫은 치워졌습니다. 시장은 진즉에 떠났고 코트를 입은 의원들도 패딩을 입은 재단 직원들도 전부 돌아갔습니다. 골목길은 평소와 다름없이 한적해졌습니다. 재이와 케이는 창작소 1층에서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얼어붙은 몸을 녹였습니다. 나는 과자를 줄 테니 2층으로 가자고 그들을 끌어당겼습니다.  
“가질래요?”
2층으로 올라가려는 우리에게 담당자가 쇼핑백을 내밉니다. 카네이션 부토니에는 쇼핑백 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어버이날 같아서 거절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케이가 보더니 꽃이 참 싱싱하다고 칭찬합니다. 한겨울에 힘들게 구하셨겠다고 담당자를 치하합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카네이션이 든 쇼핑백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갑니다. 
“집 좋다.”
케이는 내 방 벽면에 카네이션을 엮어서 포물선을 그리도록 늘어뜨립니다. 시장과 의원과 재단의 높은 사람들의 포켓에 꽂혔어야 할 카네이션입니다. 오늘의 나와 저 부토니에가 딱히 다를 것이 무언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케이가 솜씨 좋게 엮어주었으니 고맙게 생각합니다. 추위와 교통통제와 기념촬영을 다 감수하고 기다려준 것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우리는 벽에 등을 기대고 방바닥에 앉아서 허니버터칩을 바삭바삭 뜯어먹습니다. 도대체 오늘 몇 명이나 이 작은 방을 구경하고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백 명에는 못 미치겠지만 오십 명은 넘을 것 같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손님이 또 왔습니다. 
“내가 여기 주민이야!”
나는 시계를 살폈습니다. ‘5시에 차 들어옵니다.’ 라고 적어둔 맞은편 집주인이 아닐까 싶어서요. 하지만 5시까지는 아직도 10분이 남았으니 그는 아닐 것입니다. 엄지쌀집, 혹은 생선젓갈과일야채일까요?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으니 잠자코 살펴봅니다. 이번 손님은 화가 많이 나 있습니다. 손님은 자신이 이곳 태평동의 주민이라고 반복해서 말합니다. 전직 무슨무슨 주민대표였다고도 덧붙입니다. 앞서 왔다 간 손님들처럼 명함을 건네지도 않고 사진을 찍자고 하지도 않습니다. 어쨌든 손님이니까, 나는 인사를 합니다. 어서 오세요. 손님은 현관에 서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 주민을 초대하지 않은 것이야?”
나는 문득 개그맨 조세호의 억울한 개그가 떠오릅니다. 왜 개소식에 안 왔어?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왜 개소식에 초대하지 않았어? 모르는데 어떻게 초대해요. 나는 내가 모르는 태평동 주민대표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시청에서 사진이나 찍으려고 이런 걸 만들었냐는 말이야!”
전직 태평동 주민대표는 그렇게 역정을 내고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맞는 말만 하고 가시네, 하고 케이가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오늘의 손님들을 생각합니다. 골목을 까맣게 채웠던 시청 관계자들과 재단 직원들과 의원들, 협회장들, 그리고 시장을 생각합니다. 지금도 내 옆에 있는 두 명의 작가를 바라봅니다. 뒤늦게 개소식이 끝난 후에야 왔다 간 한 명의 전직 주민대표를 떠올립니다. 낮부터 레드카펫을 깔고 그렇게 요란하게 개소식을 했는데 동네사람들이 이렇게 안 올 수가 있나. 정말 무관심하지 않니, 하고 한탄조로 말하는 내게 재이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쌀집 사장님이 나보고 오늘 무슨 일이냐고 묻던데.”
느닷없이 골목을 꽉 채운 인파와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시장을 본 엄지쌀집 사장님은 쌀집 앞에 멀거니 서서 구경하고 있던 청년을 붙잡고 오늘 뭔 일이래요, 하고 물었는데 그게 바로 재이였던 것입니다. 친절한 재이는 엄지쌀집 사장님에게 쌀집 맞은편에 있는 주황색으로 도색한 2층집이 공공예술창작소라는 공간으로서 네 명의 작가들이 2년 동안 입주하여 이런저런 예술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시장 옆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는 저 사람들이 바로 그 작가들이라고요. 엄지쌀집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쌀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걸었습니다. 
전직 주민대표가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명의 작가들, 재이와 케이도 돌아갔습니다. 모든 손님들이 돌아간 후 남은 입주자들은 담당자와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자리는 몹시 화기애애했습니다. 어쨌거나 행사를 치르느라 수고했으니까, 다들 후련했던 것입니다. 담당자에게 손님들이 정말로 세탁기를 사줄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담당자는 말도 안 된다며 손을 휘휘 내저었습니다. 지방선거가 코앞이라 선거법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나는 억울해서 소리쳤습니다. 내가 먼저 사달라고 한 게 아니에요, 그 사람들이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봐서 말한 거란 말이에요. 선거법을 아는 사람들이 왜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죠? 담당자는 정치하는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하며 내 말을 넘겨버립니다. 나와는 달리 담당자는 기분이 몹시 좋습니다. 사고 없이 개소식이 끝나서 참으로 뿌듯해 합니다. 심지어 몹시 성공적인 행사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정말 수고했어요, 하면서 담당자는 내 잔을 채워줍니다. 아, 제가 뭘요. 습관적인 겸양에 담당자는 정색을 했습니다. 정말로 수고했다고, 아니 어쩌면 제일 수고했다고요. 
“시장님이 2층에서 참 오래 계셨단 말이죠.”
바쁘신 분이 예외적으로 긴 시간을 머물렀다는 것에 대해 담당자의 동료들이 한 마디씩 하며 개소식의 성공을 축하해주었습니다. 2층에서 시장님이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혹은 내가 시장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가 궁금해서 담당자의 눈이 빛났습니다. 나는 차마, 시장님은 전화통화를 했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저녁을 다 먹은 나는 다시 창작소로 갑니다. 5시가 넘은 시각이라 창작소 맞은편 주택 앞에는 집주인의 차가 주차되어 있습니다. 집주인은 오늘 골목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모르겠지요. 나는 영업을 종료한 듯한 엄지쌀집도 슬쩍 들여다봅니다. 그 순간 가게 안으로 인영이 어른거려서 얼른 고개를 숙이고 지나칩니다. 오늘 개소식에 엄지쌀집 사장님이 왔더라면, 2층에서 나와 함께 믹스커피를 나누어 마셨더라면 어땠을까요.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정해보기에는, 지금은 머리가 아픕니다. 소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입니다. 
보안카드로 경비를 해제하고 창고에 숨겨둔 요가매트를 꺼냅니다. 다시금 2층의 경비를 해제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서 요가매트를 방바닥에 깔고 그 위를 이불로 덮습니다. 이부자리 위에 드러누우니 벽에 걸린 카네이션 부토니에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비싸게 지불한 싱싱한 꽃이지만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 예쁜 쓰레기로 꾸며진 내 방이 나는 마음에 듭니다. 다시 한 번 개소식을 열어서 손님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때에는 모두가 올 수 있도록 아주 오래, 아침부터 밤까지 열어둘 것입니다. 다만 레드카펫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