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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태평한 생각 03

본 작업은 2018.01~2018.12의 기간 동안,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일대에서 생각하고 기록한 순간들을 담은 것입니다. 실제의 사건, 장소, 인물을 기반으로 하여 작가의 해석을 거친 팩션(faction)입니다. 

삼 개월을 넘게 쉬었던 상담을 다시 시작하려니, 마음이 좀 불편하네요. 게다가 지각까지 하고 말았잖아요. 마음이 무겁다보니 걸음도 느려진 것 같아요. 실제로도 가천대입구역의 경사로는 워낙 가파르기 때문에 느리게 걸을 수밖에 없었어요. 가천대입구역만이 아니라 온 동네가 다 가파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아참, 제가 말씀드렸던가요. 저는 성남의 태평동이라는 동네로 이사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태평동에 와보신 적 있나요? 저런, 죄송할 것 없어요. 저도 이사 오기 전까지는 몰랐는걸요. 그럼 지하철 태평역에도 와보신 적이 없겠군요. 지하철 노선표를 보면, 분당선 아래 부분에 있는 동네입니다. 모란시장은 혹시 아세요? 맞아요, 모란역과 한 정거장 차이예요. 글쎄요, 저도 직접 가본 적은 없어요. 그보다 가까운 곳에 이마트가 있거든요. 

네, 학원은 그만두었어요. 태평동에서 출근하려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리니까요. 그래도 미리 사정을 이야기하고 제대로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불편할 것이 두려워도 도망가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이야기하기를 잘 한 것 같아요. 원장님은 그동안 수고했다고, 일자리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어요. 물론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건 알아요. 그림만 그릴 줄 알지, 학생들을 휘어잡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학부모들에게 제대로 말도 못하는 저를 어디에다 소개하겠어요. 그래도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들으니까 좋았습니다. 하마터면 울 뻔했어요. 물론 울지는 않았습니다. 미친 사람처럼 보일까봐요. 아, 농담이에요. 

남자친구요? 그래요, 마지막 상담 시간에 결혼할거라고 했었죠. 맙소사, 제가 그런 말까지 했었군요. 선생님이 저보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라고 했던 것도 기억하세요? 하기야, 그렇게 열심히 뭔가를 적고 계시니까, 당연히 적어놓으셨겠죠.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헤어진 모양이라고 생각하시려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지만 아직 헤어진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태평동으로 이사를 온 후로는 연락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한 달이 됐나, 안 됐나. 
아니에요, 지난 번에 선생님이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다른 일 때문이에요. 아닙니다, 그것도 아니에요, 묻지 마세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튼 제가 연락하지 말라고 했고, 남자친구는 그래도 연락을 좀 하다가 제가 계속 씹으니까, 이제는 더 이상 안 하는 것 같아요. 네, 제 의사가 받아들여진 거라고 볼 수 있겠죠. 글쎄요, 제가 원하는 결과가 이것일까요. 맞아요, 속상해요. 늘 똑같은 패턴이죠. 문제는 저인 것 같아요. 항상 내가 문제예요... 잠시만요. 

다른 이야기를 해요. 좀 더 가벼운 이야기, 요즘 제 일상 같은 것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그래요, 이사 온 동네 이야기가 좋겠네요. 선생님은 태평동에 와보신 적이 없으니까, 차근차근 시작해볼게요. 태평동이라는 동네는 경사가 심한 언덕, 아니면 산처럼 생겼다고 상상하시면 될 거예요. 그 가파른 경사는 거의가 주택으로 뒤덮여 있어요. 물론 가천대입구역 위쪽으로 아파트 단지가 있고, 또 이마트 근처에도 작게 아파트 단지가 있기는 해요. 빌라도 섞여 있고요. 하지만 역시나 주택이 제일 많습니다. 저한테는 굉장히 낯선 풍경이죠. 저는 대전에서도 계속 아파트에 살았고, 서울에 와서도 등촌동 주공아파트에서 살다가 나중에는 오피스텔로 옮겼거든요. 아무튼 10층 아래로는 내려가 본 적이 없는 삶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사는 태평동 집은 2층짜리 주택이란 말이죠. 굉장히 낯설어요. 좋은지 싫은지 아직 모르겠어요, 아무튼 어색합니다. 여기는 내 동네가 아니라는 생각뿐이에요.

태평동으로 이사를 온 제일 큰 이유는 아무래도 돈이죠. 제가 사는 집의 주인은 이모예요. 아, 이모가 태평동에서 사는 건 아니고요. 그저 이쪽 동네에 집을 몇 채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렇죠, 전에 이야기했던 부자 이모예요. 맞아요. 네, 이모부가 자살한 그 이모요. 이제 기억나시죠. 
이모가 가진 다른 집들은 다 재개발 지역에 들어가서 팔아버렸는데, 이 집만 재개발이 안 되어서 못 팔았대요. 도시 재생? 뭐 그런 지역으로 묶일 수도 있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는 일이고요. 하여간 이모는 누구라도 집을 사겠다고 하면 팔아버리고 이쪽 동네에 신경을 끄고 싶은가 봐요. 하지만 도시 재생지역이라 개발이 안 된다니까 집이 잘 안 팔리고, 그렇다고 아무 세입자나 들였다가 나중에 안 나가겠다고 버티면 골치 아파지는 거잖아요. 그럼, 언제 나가라고 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세입자가 누구겠습니까. 그렇죠. 그리고 저는 엄마가 부자 이모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걸 잘 알거든요. 엄마는 충성스러운 개 같아요. 혹시 제가 너무 솔직해서 선생님을 불편하게 하나요? 아니라면 다행이고요. 부디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세요. 
저는 돈을 아껴야 하는 상황이고, 2층집을 혼자 쓸 수 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아직도 좀 어색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살아보는 것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당을 가꾸어보라고요? 좋은 의견이긴 하네요. 그렇지만 이 동네에는 마당이 없습니다. 말했잖아요, 태평동은 산이라고요. 마당이 없으니 집과 집은 바짝, 마치 아파트나 오피스텔의 옆집들처럼 바짝 붙어있어요. 그리고 마당 대신에 옥상에다가 화분을 잔뜩 늘어놓은 집들이 많아요. 고추니 상추니 깻잎이니 하는 화분들만이 아니라 담쟁이덩굴을 여기저기 감아놓기도 하고, 제 키만 한 나무가 몇 그루씩이나 올라가 있기도 하고 그래요. 아,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일부러 남의 집 옥상을 훔쳐보고 다닌 건 아닙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담배 하나 피우려고 옥상에 올라갔다가 빨래를 걷는 옆집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기겁하고 내려왔지 뭐예요. 집들이 너무 바짝 붙어있어서. 옥상과 옥상, 지붕과 지붕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라니까요. 그 모습이 상상이 되세요? 그래요? 그렇군요. 저는 선생님이 계속 서울에서 사신 줄 알았어요. 저는 그런 풍경이 처음이라서요. 좋은지 싫은지 자꾸 물어보지 마세요, 정말 모르겠다니까요. 

이웃들과 어떻게 지내냐니요. 뭘 어떻게 해요, 저는 그냥 살고 있을 뿐인데. 오다가다 마주치면 인사하고, 그걸로 끝. 더 이상 무언가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태평동이라고 해서 아파트 살 때랑 별로 다를 건 없어요. 그리고 저는 낮에는 집밖으로 잘 안 나갑니다. 골목에 다니는 사람도 없는데, 돌아다니면 너무 튈까봐요. 나와 봤자 갈 데도 없거든요. 카페나 빵집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어요. 다들 외식을 안 하고, 자기 집에서 밥 먹고 차 마시고 그렇게 지내는 것 같습니다. 서울의 핫한 망원시장 같은 걸 상상하시면 안 된다고요. 
아참, 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공원도 없구나. 아파트에 살 때에는 단지 안에도, 또 바깥에도 작게 공원이 있었거든요.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구경하기 좋았는데. 태평동에서는 제가 아직 산책로를 못 찾아선지, 그런 게 별로 없어요. 
아무튼 여긴 그냥, 사람들이 사는 동네예요. 경사가 심하고 공원이 없을 뿐이지 사는데 필요한 건 다 있습니다. 편의점도 있고 파리바게트도 있고 이마트도 있고. 아 그리고 학교도 있고요. 저요, 얼마 전에 태평동의 한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태평동에서 무슨 프로젝트가 열렸거든요. 태평동의 여러 초등학교에 작가들이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 그림을 보고 작가들이 다시 각자 작업을 하는 그런 프로세스란 말이에요. 말하자면 1일 특강, 혹은 작가와의 만남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어쨌든 아이들 입장에서는 수업이잖아요. 그런데 처음 보는 작가들하고 여덟 살, 아홉 살 꼬마들이 그림을 그리다보면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생기게 될 것이 뻔하잖아요. 선생님도 아이를 키우셨다면, 어머 아니에요, 취소할게요. 너무 사적인 질문인 것 같아서요. 아무튼 그 상황을 한번 상상을 해보신다면, 별별 일이 생길거란 말이죠. 너무 빨리 그리거나 너무 늦게 그리거나 하는 경우도 있고, 화장실을 가야 하는 아이도 나오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울기도 하고, 심지어 그림 그리기를 싫어하는 아이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한 마디로 진행요원처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작가들과 진행요원들은 굉장히 아침 일찍부터 모였어요.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에 미리 만나서 이것저것 준비를 해야 하니까, 정말로 이른 시간에 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참여했던 작가들은, 음, 선생님은 미술을 잘 모른다고 하셨으니까, 그분들의 이름을 말해도 모르시겠죠. 아무튼 그날 모였던 분들은 대부분이 ‘선생님’들이었어요. 교수라든가 중견작가라든가 무슨무슨 협회 소속이라든가 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에요. 저는 그중에서 비교적 젊은 작가와 2인 1조가 되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작업한다는 작가였는데, 아침부터 그를 찾는 전화가 여기저기에서 걸려오더군요. 아주 바쁘고 열정적인 작가처럼 보였습니다. 주관단체에서 아침식사로 제공해준 떡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전화도 받고 다른 작가들과도 농담을 주고받고 하는 모습을 보고 알았죠. 저하고는 안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저는 사실 전날부터 긴장이 되어서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고작 진행요원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말이죠. 학원에서 일할 때, 그림 그리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제가 얼마나 많이 봤는지 아시나요.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두 시간 뿐이고, 한 아이당 하나씩 주어지는 나무캔버스는 여분이 없으니 망치거나 실패하면 안 되는데, 도대체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작가와 저는 둘이서 한 차를 타고 이동했어요. 차 안에서도 작가는 계속해서 전화를 하고, 그리고 저에게도 말을 시켰습니다. 처음에는 태평동에 와보니 인상이 어떠냐고 묻기에 여기에 산다고 대답했죠. 그러니까 반색을 하면서, 이것저것 더 물어대는 거예요. 산이라서 공기가 맑겠다느니, 운동이 절로 되겠다느니.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도 멈출 줄을 모르더군요. 주차를 할 공간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물어서 차가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더 이상 질문을 받기 싫어서, 수업은 어떻게 진행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뭐라는 줄 아세요? 아이들하고 즐겁게 놀 생각에 설렌대요. 저는 어이가 없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너무 솔직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자신만만한 사람 앞에서 긴장한 티를 내면 무시당할까봐 걱정되기도 했고요. 이해가 되시나요? 고마워요. 
네? 초딩이 나라를 지킨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죠. 초딩 때문에 북한에서 못 쳐들어온다고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아, 네, 이제 이해했어요. 맞아요, 맞아요. 요즘 애들 무섭죠. 제가 있던 학원에서도, 거기는 중고등학교 입시를 다 해서 초딩과 중딩을 다 봤거든요. 덩치가 저보다 큰 아이들이 대부분인데다가 화장도 저보다 진하고, 욕도 잘 하고, 그리고 또. 
그게 전부였어요. 중2병이 무섭고 초딩들이 무섭고 어쩌고 하는데, 사실 제일 무서운 건 어른들 아닌가요. 범죄도 어른들이 더 많이 저지르는걸요. 그리고 욕 좀 하면 어때요, 애들이잖아요. 품위 있는 말만 하면서 상대방한테 모멸감을 주는, 그런 어른들이 저는 훨씬 더 무서워요. 애니까 화장을 못 하는 건 당연한데, 그걸 가지고 못된 애들이라고 꾸짖거나 촌스럽다고 비웃는 게 왜 당연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그냥 제 의견이니까 이해해주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날 아침에 제가 긴장했던 건, 초딩을 만나야 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낯선 곳에 가서 모르는 사람을 스무 명이 넘게 만나야 하기 때문에 그랬던 거예요. 초등학교 정문을 통과해서 운동장에 주차를 하고, 작가의 차에 실어둔 나무 캔버스 20여 개를 내리고, 현관을 지나 복도를 걸어가면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어요. 학과 수업이 이미 시작되어버린 시간이라서 복도에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건 마치 지각생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다들 교실에 들어가 버린 빈 복도를 걸어보신 적이 있나요? 이제 곧, 엄청나게 혼날 거라는 생각에 다리가 후들거리는 기분이 들죠. 일부러 느껴볼만한 것은 못 돼요. 

작가와 저는 1학년 1반 교실의 앞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다행히도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계셨어요. 체구가 크고 부산 억양을 쓰는 여자 선생님이셨죠. 학생들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던 담임 선생님은, 우리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오늘 함께 해주실 화가 선생님이 오셨어요!”하고 큰소리로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에 스무 명이 넘는 아기들이, 그래요, 입학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으니 아직 유치원생이나 다름없는 아기들이죠. 스무 명이 동시에 우리를 보면서 “우와!”하고 외쳤습니다. 그 순간에 저는 아마도 얼굴이 빨개졌을 거예요. 거울을 볼 수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얼굴에 확 열이 올랐거든요. 그리고 작가는 확실하게 얼굴이 빨개졌죠. 

담임 선생님이 교실 뒤쪽으로 물러난 후, 작가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마을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보고 저는 한숨을 쉬었죠. 제가 걱정한 것이 바로 그런 거였거든요. 어떻게 그런 말로 수업을 시작할 수 있는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시네요. 그러면 제가 물어볼게요. 선생님은 마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이제 아시겠죠.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고요. 그런 걸 대뜸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애써 대답하려고 하실 필요 없어요. 그래도 굳이 고민을 하시네요, 이럴 때 보면 선생님도 참, 그래요. 마을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지요. 네, 생각해본 적 없는 게 당연하죠. 마을이라는 말 자체를 잘 안 쓰는 걸요. 마을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쓰는 건 아마도 공무원일걸요. 선생님은 ‘마을 만들기 사업’이라는 것을 들어보셨나요? 네, 그런 사업이 있답니다. 그것도 한번 검색해보세요. 마을 만들기 사업을 안 하는 지자체가 없을 걸요. 선생님이 사는 지역에서도 마을을 만들고 있을 거예요. 왜요? 5년 동안 예산을 100억 들일 거라고요? 정말로요? 대단하다, 동작구. 그나저나 선생님은 동작구에 사시는군요. 처음 알았네요. 뭐, 저는 태평동이라고까지 이야기했잖아요. 주소까지 알려드려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민로 이백사십- 여기까지만 할게요.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어요. 다들 우물쭈물하더니, 한 아이가 질문을 했지요. “마을이 뭐예요?”라고요. 그 순간에 선생님처럼 사전을 찾아볼 생각은 저도, 작가도 하지 못했어요. 우리는 서로 마주보았지만, 그래봤자 이날 아침에 처음 본 사이인데 텔레파시 같은 게 통할 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작가도 아니고 진행요원이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맞지요. 제가 입을 꼭 다물고 있으니 결국 작가가 말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머뭇거리면서 다시 말했어요. “그러게요, 마을이 뭘까?” 

지금 웃으시는 건가요? 하기야 웃을 만하죠, 아이들도 웃었거든요. “마을이 뭔지도 몰라요?”하면서 말이죠. 작가도 웃었습니다. “그래, 선생님은 마을이 뭔지 몰라요. 그러니까 알려줄래?”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소리쳤어요. “아이 참, 어른이 그런 것도 몰라요?” 그 말에 작가는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척을 했어요.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고, 그리고 그때부터 시끄럽게 떠들어댔어요. 그렇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없었습니다. 아니, 뭘 기대하시는 거예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치원생이었던 아이들이라니까요. 마을은 우리가 사는 곳이다, 마을은 동네랑 똑같은 것이다, 마을은 고향이다, 그런 정도의 말들이 나왔을 뿐이죠. 아이들이 뭘 알겠어요, 어쨌거나 아이들이 떠드는 수업은 침묵하는 수업보다 백 배는 낫답니다. 
마을에 대해서 실컷 떠들게 한 다음, 작가는 “그럼 우리 동네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죠?”하고 질문을 던졌어요. 더 구체적으로 “오늘 학교에 오는 길에 무엇을 보았나요?”하고 묻기도 했고요. 모든 아이들이 한 마디씩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 고양이, 자동차, 하늘, 신호등, 문방구. 흐뭇한 표정이시네요. 순수한 동심, 뭐 이런 걸 느끼시나봐요. 하지만 아이들은 선생님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답니다. 누군가가 똥, 오줌, 이런 걸 말하기 시작하면 분위기는 그쪽으로 흘러가버려요. 경쟁적으로 가래, 침, 그런 걸 말하기 시작하죠. 아무튼 수업이 활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으니 저는 눈치를 보면서 조용히 교실 뒤쪽으로 갔습니다. 때마침 담임 선생님이 뒷문을 열고 들어오시더군요. 따뜻한 차를 두 잔 가지고 말이에요. “수업하기 힘들지 않으세요?”하고 속삭이시기에, 그냥 웃어드렸습니다.

아이들은 다들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해결된 셈이죠. 아이들이 그림그리기를 거부할까봐 정말 걱정했거든요. 이제 문제는, 너무 빨리 그리는 거예요. 그리고 그 걱정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차를 아직 다 마시지도 못했는데 벌써 손을 드는 아이가 보이더군요. 작가가 먼저 다가갔죠. 그림을 들여다보며 뭐라고뭐라고 말하더군요. 아마 이걸 더 그려라, 아니면 이 색을 칠해보아라,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소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라는 거죠. 입시생 같으면 간단하게 ‘완성도 더 높여.’하고 지시하면 끝인데, 그럴 수가 없으니 어려운 거예요. 그렇게 작가가 한 명을 붙잡고 있는 걸 보고 있는데, 맨 뒷줄에 있던 아이가 몸을 돌리고 저를 부르더라고요. 

처음에는 저를 부르는 줄도 몰랐어요, “선생님.”하기에 당연히 담임 선생님을 찾는 줄 알았죠. “다 했어요.”하면서 나무 캔버스를 흔드는 걸 보고서야 저를 찾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담임 선생님도 저한테 눈짓을 하시더군요. 저는 진행요원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 순간에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쭈뼛거리며 다가가보니, 한 번도 그림을 배운 적이 없는 티가 나는 그림이더군요. 아니요, 창의적이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리고 말이죠, 그림을 배우지 않아야 창의적으로 그릴 수 있다는 건 편견이랍니다. 미술학원의 정형화된 스타일로 그려낸 그림이 따분하게 못 그렸다면, 아무 것도 배우지 않은 무지한 상태로 그린 그림은 순수하게 못 그린 거죠. 배운다는 것이 꼭 학원에서만 가능한 건 아니니까요. 그림책을 따라 그리거나 옷에 그려진 캐릭터를 베껴보거나 아니면 그냥 가족의 얼굴을 보고 그리거나 하는 것들도 다 일종의 배움이고 훈련인걸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아무튼 지금은 창의성에 대한 제 견해를 말하는 시간이 아니니까, 다시 돌아가 보죠. 
그 아이의 그림은 지독하게 썰렁했어요. 화면 위는 아마도 하늘인지 구름이 한 개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쪽 가운데에는 커다란 네모가 있었습니다. 네모 왼쪽에는 사람이 세 명 서 있었고 네모 오른쪽으로는 약간의 여백을 두고 작은 네모가 하나 있었을 뿐이에요. 색칠이라고는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고 오직 흰색과 노란색으로만 이루어진 스케치에 불과했어요. 더 큰 문제는, 도대체 뭘 그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저뿐만 아니라 누구도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볼 수 없는, 못 그린 그림이었죠. 이게 뭐지? 하고 생각한다는 게,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서 말해버렸습니다. “이게 뭐지?”하고요.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제 실수였어요. 말해놓고 후회해도 이미 늦었지만. 
다행히도 아이는 제 말에 조금도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이게 뭐지?”를 말 그대로 받아들인 아이는 “이건 집이에요.” 하고 해맑게 대답했어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저는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건 한 집에 살고 있는 세 명의 할머니가 파를 캐고 있는 풍경이었어요. 세 자매인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아이는 조금 당황한 듯이 대답했어요. “할머니들은 가족이 아니에요. 그냥, 같은 집에 살아요.” 너는 어디에 있냐고 묻자, 아이는 오른쪽의 작은 네모를 가리켰어요. “저는 집에 있어요.” 그럼 너를 그리라고 말해줬죠. 아이는 이마를 탁 쳤어요. “맞다, 나를 안 그렸네!” 저는 이 아이를 계속해서 그리게 해서, 수업이 끝나는 속도를 맞춰야 한다는 의무감에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너는 누구랑 있니? 너희 동네에는 할머니와 파 말고 또 뭐가 있니? 제 질문에 아이는 하나하나 그림 속 마을을 채워갔어요. 아이는 친누나도 사촌누나도 아닌 옆집 누나와 함께 집에서 놀고 있고, 집 밖 골목길에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함께 놀고 있었죠. 그래도 인물이 네 명밖에 없으니 화면이 너무 허전했어요. 두세 명 더 그리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이웃집은 없니?”하고 살살 유도를 해보려고 했지만 아이가 고개를 저었어요. “없어요.”하면서 말이죠. 핑계도 참 뻔하게 대는구나, 역시 아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오늘 처음 본 사이니까 적당히 봐주기로 했지요. 아이는 손에 힘을 잔뜩 주고 그리는 편이라 사실 좀 지쳐 보이기는 했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크레파스를 쥐는 법, 힘을 조절하는 법, 색칠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왜요, 제가 아이의 창의성을 해쳤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이는 제가 가르쳐준 대로 열심히 그리고 또 칠했습니다. 저는 다시 교실 뒤로 가서 기대어 섰어요. 담임 선생님이 흐뭇하게 바라보시더군요. 학교 선생님들은 다 힘들테지만, 그중에서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아무나 못하는 일인 것 같아요. 어찌나 낯간지럽게 말씀을 하시던지. 저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역시, 화가 선생님이시다보니까 다르시네요, 저렇게 열심히 하는 아이가 아니었는데.”하는 거 있죠. 저는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선생님 말씀을 떠올리며 꾹 참았어요. 왜, 제가 칭찬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보니 칭찬 비슷한 걸 받으면 부정부터 하는 습관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남들은 칭찬을 받으면 감사합니다, 라고 하는데 저는 아니에요, 부터 말한다면서요. 그래서 그 말을 떠올리며, 화가 선생님 어쩌고 하는데 그냥 씩 미소를 지었죠. 네, 바로 지금처럼요.   

교실 뒤쪽에는 아이들이 앉아있는 책상 배치표가 붙어있었어요. 그걸 보고 저는 제가 좀 전까지 그림을 봐준 아이의 이름을 알아냈습니다. “선호는 자기 집 주위에 이웃이 없대요.”하고 담임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제 무의식중에 ‘화가 선생님이라 다르다, 아이가 열심히 한다’던 담임 선생님의 칭찬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가 뭐 하러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굳이 말을 걸었겠어요. 
담임 선생님은 네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더라고요. 제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대충 넘기는 태도에 저는 좀 기분이 상했어요. 그래서 더 정확하게, 한 번 더 말했죠. “그림을 풍성하게 해주려고 이웃집 사람들도 그려보라고 했는데, 이웃집이 없다는 거예요.”하고 말해놓고 보니, 선호를 고자질하는 것처럼 돼버린 것 같았어요. 게다가 담임 선생님은 눈이 똥그래져서 저를 쳐다보시고. 그래서 “선호가 힘들었나봐요.”하고 얼른 덧붙였죠. 거의 변명하듯이, “1학년이 한 시간 가까이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죠.”까지 말하는데, 담임 선생님이 저한테 귓속말을 했어요. 

“선생님, 선호는 정말로 이웃집이 없어요.”      

선호네 집은 재개발 지구로 선정이 됐어요. 주택을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게 되는 지역이라는 말이죠. 어쩌면 선호와 할머니는 저의 부자 이모네 집에 세입자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철거를 앞두고 대부분의 이웃들은 이미 퇴거를 마쳤지만, 선호의 할머니는 마땅히 이사 갈 집을 찾지 못해서 퇴거가 늦어지고 있다고 해요. 이제 선호의 동네에는 이웃들이 남기고 간 파밭에서 파를 뽑는 할머니 두어 명 정도만 남아있겠죠. 선호의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와 파를 뽑고 있으면, 그 할머니의 손녀는 선호와 집에서 놀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웃이 사라진 골목에서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놀고 있을 테고요. 선호의 그림은 창의적이지는 않았지만 지독히도 사실적이었습니다.

그쯤에서 저는 작가에게 다가갔어요. 저는 선호 한 명만 봐줬지만, 작가는 여러 아이들의 그림을 봐주느라 아주 녹초가 되어있더군요.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많이 미안하진 않았어요. 작가가 자기 입으로 그랬잖아요, 아이들하고 즐겁게 놀 생각에 설렌다고. 자기 계획대로 여러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겠죠. 그래도 혹시 생각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니, 다가가서 물어보았습니다. “작가님, 즐거우신가요?”하고요. 작가는 제가 말을 걸기 전까지는 옆에 온 줄도 몰랐어요. 저를 보고서 깜짝 놀라더니, “우리, 큰 실수했다.”하더군요. 어이가 없어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맞아요, 갑자기 반말을 하는 게 별로였어요. 하지만 작가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 같았으니 거기까지 지적할 생각은 없어요. 제가 기분이 나빴던 포인트는 ‘우리’라는 말이었어요. 이 수업은 자기가 준비해서 자기가 하는 거니까, 실수도 자기 것이잖아요. 돈도 저보다 훨씬 많이 받을 거면서. 왜 ‘우리’ 실수라고 하면서 나까지 물고 늘어지냐 이거예요. 네, 저는 이런 문제에 좀 예민해요. 예전에 학원에서 크게 데인 적이 있거든요. 소묘 특강 기획하던 강사가 도와달라고 해서 보조해주기로 했는데, 수채화 수업이랑 시간이 물려서 예상보다 애들이 확 줄은 거예요. 하필이면 연필소묘도 아니고 목탄 특강이라서 재료가 많이 남았는데. ‘우리’ 실수니까 같이 재료비 메꾸자는 거예요, 미친놈이. 그깟 재료비 얼마나 한다고, 자기보다 열 살이나 어린 보조강사한테 같이 내자고 해요. 그리고 그 정도 재료비는 학원에서 내는 게 맞는 건데, 원장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환장을 한 거죠. 하지만 제일 싫은 건, 알면서도 바보처럼 해달라는 대로 해준 저죠. 
아, 작가가 저지른 큰 실수가 뭐냐고요? 저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작가가 알아서 말하더군요. “검정을 못 쓰게 했어야 하는데.” 

크레파스로 채색화를 할 때는 노란색 같은 밝은 색으로 스케치를 하고, 그 후에 밝은 색부터 어두운 색으로 옮겨가는 게 정석이에요. 노랑 위에는 파랑을 올릴 수 있지만, 파랑 위에는 노랑을 올리기가 힘들거든요. 그런데 심지어 검정이 들어간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 그림은 이제 끝난 거예요. 아무 색도 못 올려요. 그저 검정색만 죽어라 칠할 수밖에요. 밤이 되는 거죠, 뭐. 저는 작가한테도 그렇게 말해줬어요. “밤 풍경이라고 하면 돼지 뭐, 우리 마을이 낮이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러자 작가는 마구 웃더군요. 나참, 작가가 그 정도 창의성도 없다니.

그런데 작가의 말을 듣고서 아이들의 그림을 보니까, 검정색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의외로 검정을 그림 가운데에, 상당히 넓은 면적을 칠한 아이들이 많았어요. 네? 재개발로 이사를 하게 된 바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거 아니냐고요? 선생님, 아동심리치료도 하시나 봐요. 아, 준비 중이시구나. 네, 뭐, 그런 해석도 가능할 텐데요. 태평동 1학년 1반은 그런 거 아니에요. 심지어 선호는 검정을 아예 안 썼다고요. 아니요,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마시라니까요. 아니요, 밤이 아니고요. 아이들이 왜 검정을 썼겠어요, 뻔하잖아요. 제가 여러 번 말했는데. 태평동은 산이라고요. 맞아요, 산처럼 가파른 경사로. 그 경사로가 흙길이겠어요? 쭉 뻗은 아스팔트 대로라고요. 검은색 선을 사이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니까요. 말했잖아요, 아이들은 사실적으로 그린다니까요.       

한 시간이 넘어가니, 아이들은 급속도로 집중력을 잃어갔습니다. 저와 작가는 완성했다고 외치는 아이의 그림은 재빨리 수거했어요. 더 붙잡고 있으면 그때부터는 그림을 망칠 뿐이거든요. 그림을 제출한 아이들이 교실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해서, 담임 선생님이 나서서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내보냈어요. 그러자 아직 완성을 못한 아이들까지도 나가서 놀고 싶은 마음에 우르르 제출하고 나가버렸죠. 우리는 빈 교실에서 아이들의 그림을 정리했습니다. 저는 작가에게 선호의 그림이 괜찮지 않냐고 물어봤어요. 작가는 선호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이게 뭐죠?”하더라고요. 저는 자세히 설명을 해줬어요. 여기는 파밭이고, 할머니들이 파를 캐고, 선호가 집에서 누나랑 놀고 있고, 강아지랑 고양이도 골목에서 놀고 있고. 기껏 설명했더니 작가가 하는 소리라고는 “그런데 이웃집이 아무도 없다는 게 좀 비현실적인 공간이네요.”하는 거 있죠. 더 이상 말해 뭐하겠어요, 포기했어요. 그러자 작가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그림을 들고 와서는 이건 고라니고 이건 멧돼지고, 하면서 자기도 설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아니, 아파트 단지에 멧돼지라니요. 의심스러웠지만, 작가가 “아이한테 물어봤는데, 뒷산에 멧돼지가 산대요!”하고 하도 강조하기에 그냥 넘어가 주었습니다. 아무튼 아이들의 그림은 사실을 담고 있으니까요. 

이웃이 없다는 것, 멧돼지가 있다는 것보다도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스무 장의 그림들을 늘어놓고 보니, 검은 아스팔트들 사이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죠. 하나씩만 볼 때는 몰랐는데, 모아놓으니까 확 튀더라고요. 바로 무지개였어요. 절반 가까운 아이들이 그림 속에 무지개를 그려 넣었습니다. 글쎄요,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겠어요. 아이들은 하늘에 뭔가를 그려 넣기를 좋아해요. 햇님과 구름은 안 그리는 아이가 드물죠. 그거 말고도 달, 별, 참새, 비행기 등등 그리고 싶은 건 다 그리죠. 어떻게 하늘에 해와 달이 같이 있어, 이건 말이 안돼, 하고 누군가가 막지만 않는다면요. 아, 아이들이 사실대로 그리는 건 사실입니다. 다만 자기가 사실이라고 믿는 사실일 뿐이죠. 작가가 혀를 찼습니다. “얘네들 다 같이 무지개 나오는 만화라도 봤나.”그 말투는 미묘하게 기분이 나빴습니다. 멧돼지는 되고 무지개는 안 될 이유가 대체 뭔가,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욱하는 마음에, 물론 미소를 지으며 받아쳤어요. “이 동네에서 무지개 보신 적 없구나.” 뒷말을 흐린 건 의도적이었습니다. 작가는 의외로 순순했어요. “어, 보신 적 있어요? 그러고 보니, 저번 달에 비가 왔죠?” 앞 질문은 대답할 수 없었죠, 아직 한 달밖에 태평동에 살지 않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비가 왔던 것은 사실이니까,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무려면 어때요, 저보다 더 오래 태평동에 살아온 아이들이 그렇다고 하는데. 

선생님, 이렇게 해서 저는 무지개 마을에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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